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요양병원 입원 10명 중 7명이 입원 필요 없는 노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요양병원=현대판 고려장’ 막으려면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죽으러 가는 기분이야. 동네 사람들 요양병원 갔다가 돌아온 사람 아무도 없어.”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한 날 아침 할아버지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2020년 9월 방송된 KBS 요양병원 고발 리포트의 한 장면이다. 가족들이 노인을 돌보기 어려워 끝이 뻔히 보이는데도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현대판 고려장’의 모습이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 100만명 중 입원 필요자는 15만명 수준
85만명은 간병·식사·주거 등만 해결되면 집에서 요양 가능
돌봄서비스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50만명이 장기 입원 중
장기요양-건강보험 일원화하고 재가서비스 대폭 확대해야

우리나라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 약 100만 명 중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노인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85%의 노인은 간병과 식사, 주거와 같은 돌봄서비스만 있으면 집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노인 중 약 절반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6개월 이상 장기입원하고 있다. 국가가 돌봄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이 돌봄 여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선택하게 된다.

현대판 고려장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 실패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노인 돌봄에 단지 돈을 적게 쓰기 때문이 아니다.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과 노인 인구 비중을 고려하면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노인 돌봄에 쓰고 있다.

건강 나쁘지 않아도 요양병원 입원

김윤의 퍼스펙티브

김윤의 퍼스펙티브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노인 돌봄에 GDP의 1.3%를 지출한다. OECD 국가 평균 1.7%에 비해서 적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80세 이상 노인 인구 1인당 노인 돌봄 재정 지출을 비교하면 OECD 국가 평균 수준이다. 80세 이상 노인 인구를 기준으로 비교하는 이유는 이들이 돌봄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노인 돌봄에 적지 않은 재정을 지출하고 있으면서도 현대판 고려장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으로 재원이 이원화되어 있어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건강 상태와 기능 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을 대상으로 등급을 판정한다. 전체 5등급 중 건강 기능 상태가 나쁜 1~2등급에 한해서 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 기능 상태가 나쁘지 않아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해도 요양병원에 아무런 제약 없이 입원할 수 있다. 요양병원은 장기요양보험이 아니라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보상받기 때문에 입원하는데 장기요양보험 등급이 없어도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요양병원은 관리하지 않고 요양원만 관리하는 것은 뒷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 앞문만 잘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체계로는 의학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는 노인이 장기 입원을 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10명 중 7명은 입원할 정도로 건강 기능 상태가 나쁘지 않은 노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기준 요양병원 진료비는 6조4000억원으로 장기요양보험 재정 8조9000억원에 버금가는 규모로 늘어났다. 이대로 가면 장기요양보험의 뒷문인 요양병원 진료비가 장기요양보험 전체 재정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반쪽짜리 돌봄서비스 노인에게 제공

현대판 고려장이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노인 돌봄의 주체가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요양보험은 간호·간병과 함께 식사 등을 해결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집에서 살기는 어렵다. 살 곳이 마땅치 않은 노인에게는 집이 필요하고, 쪽방처럼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할 수 없는 경우 도시락 배달이 필요하고, 병원에 가야 할 때는 장애인 콜택시 같은 이동 수단이 필요하다. 이런 서비스는 시·군·구 노인 돌봄 사업에서 담당한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은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노인을 대상으로,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는 등급 신청을 했으나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아 등급을 받지 못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으면 시·군·구 노인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기요양보험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모두 반쪽짜리 돌봄서비스를 각각 다른 노인에게 제공하고 있으니 반쪽짜리 서비스만으로 집에서 살 수 없는 노인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장기요양보험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된 노인 돌봄체계가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을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내몰고 있다. 간병 살인이 발생하고 현대판 고려장이 계속되어도 장기요양보험도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나서는 곳이 없는 것이다.

노인이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뇨병이나 뇌졸중 같은 지병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노인과 가족의 약 절반이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이유로 건강 상태 악화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노인 중 거동이 불편해 아파도 병원에 제때 가지 못하는 비율이 약 15%에 달하고, 장기요양대상자의 4명 중 1명이 건강이 나빠져 입원하는 실정이지만, 이들을 위해 왕진을 하는 동네병원은 전국적으로 약 100여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장기요양보험이나 시·군·구 노인 돌봄 사업과 연계되어  있지 않아 돌봄을 받는 노인이 건강 문제를 호소해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이 요양원 입원 부추겨

현대판 고려장이나 간병 살인으로 상징되는 노인 돌봄의 실패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195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2024년 노인 수가 1000만 명을 넘고, 2040년엔 국민 3명 중 1명이 노인인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 장년층인 베이비 붐 세대가 현대판 고려장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 청년들이 부모를 돌봐야 하는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노인 돌봄체계를 개혁하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외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노인 돌봄체계를 개혁하는데 대개 20년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약 절반은 요양원과 요양병원, 노인시설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으로 인한 것이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집단 감염을 줄이기 위한 간호·간병 인력 확충, 감염 관리 강화와 같은 대책도 필요하지만,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유행과 계속 되풀이될 것으로 예상하는 새로운 감염병의 유행을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노인 돌봄체계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첫째, 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으로 이원화된 노인 돌봄재정을 장기요양보험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요양병원 진료비를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신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를 대폭 확대해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 수준은 OECD 국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장기요양보험은 노인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재가서비스에 지급하는 돈의 2배를 입원비로 주고 있다. 사실상 장기요양보험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라고 노인을 떠밀고 있는 셈이다.

동네 병·의원 노인주치의 기관 지정해야

둘째, 노인 돌봄의 주체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해 노인이 반쪽이 아닌 온전한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군·구가 노인 돌봄 사업의 주거·식사·이동 서비스와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를 함께 아울러서 노인이 집에서 사는 데 필요한 온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장기요양보험이 재정을 운영하는 권한과 책임을 계속 갖더라도 시·군·구가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노인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시·군·구별로 노인 인구수와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고려하여 지출할 수 있는 재정의 총액을 설정해 관리하면 낭비적인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셋째, 돌봄이 필요한 모든 노인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노인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에서 등급을 판정할 때부터 주치의가 노인의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지속해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의사가 왕진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지속적으로 방문해서 건강을 관리하고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약 1000개의 동네 병·의원을 노인주치의 기관으로 지정하면 가능한 일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