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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서울시향은 그만…청와대에 전용 공연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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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2011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말러의 ‘천인교향곡’ 연습을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강당을 빌렸다. [중앙포토]

지난 2011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말러의 ‘천인교향곡’ 연습을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강당을 빌렸다. [중앙포토]

“지금 한국에서 없어서 불편하고 창피한 시설이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이다. 개방된 청와대 자리에 콘서트홀을 짓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공연장이 적당하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의 대표가 청와대 안에 오케스트라 공연장 건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1960년대 여의도 개발에 참여하고 90년대 용산 개발의 마스터플랜을 만든 건축가다. 2018년 발족한 광화문광장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청와대 내 공연장 아이디어는 광화문에서 이어진다.

김원 대표

김원 대표

그는 1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광화문·경복궁·청와대·북악산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녹지공간이 생긴다. 녹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와 예술이 있어야 한다”며 “청와대 부지 활용 방안으로 논의되는 기록관·박물관은 다소 진부하다. 필요하지만 없는 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오케스트라, 특히 서울시향의 전용 공연장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는 “거론되다 흐지부지된 서울시향 콘서트홀이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청와대 부지가 적합하고, 논의를 시작하기에 시점도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적 교향악단인 서울시향의 전용 공연장 건립은 오랜 이슈다. 정명훈 지휘자가 서울시향을 맡은 2005년 구체화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정명훈은 “전용 콘서트홀 건립을 조건으로 예술감독직을 계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산과 부지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2006~ 2010) 때 한강 노들섬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오 시장이 오페라하우스 등 공연시설 건립을 추진했으나, 시의회에서 표류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에 주말농장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오 시장은 올 초 “더는 노들섬을 방치된 땅으로 남겨둘 수 없다”며 개발 추진 의사를 밝혀 서울시향 콘서트홀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지만, 구체적 논의는 없다.

한 오케스트라의 전용 공연장은 악단의 발전과 맞물린다. 공연뿐 아니라 연습도 전용홀에서 하며 오케스트라의 고유한 사운드를 만든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장인 베를린 필하모니, 빈 필하모닉의 무지크페어라인 홀 등이 대표적이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는 1888년 개관한 전용 공연장의 수준 높은 음향 덕에 무르익은 특유의 소리를 자랑한다.

세계적인 지휘자들도 악단을 맡을 때마다 제대로 된 공연장을 요구한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2015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직 계약을 조율하면서 새 공연장을 약속받았다. 예산 2억8800만 파운드(약 4560억원)의 프로젝트는 지난해 폐기됐고, 래틀은 올해를 끝으로 오케스트라를 떠난다.

서울시향은 10여 년 동안 주장하고 못 가졌던 전용 공연장의 현실화 방안을 찾고 있다. 김원 대표의 ‘청와대 내 공연장’ 아이디어도 서울시향의 검토안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이사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제 여건이 무르익었다. 우선 서울의 위상이 달라졌고, 시민들의 문화 수준이 더 높아졌다”고 했다.

손 대표는 전용 공연장이 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기는 손실을 지적했다. 서울시향은 현재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빌려 공연한다. 한해 정기공연 40여회를 두 곳에서 나눠 진행한다. 손 대표는 “내년 서울시향의 예술의전당 공연은 8회다. 예술단체가 공연장을 고루 사용해야 한다는 정책 때문에 대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명망 있는 지휘자·연주자와 미리 일정을 맞춰 공연 계획을 잡기 쉽지 않다.

국내에는 현재 전용 공연장을 가진 오케스트라가 거의 없다. 부천필하모닉이 상주하는 부천아트센터가 내년에 개관한다. 1445석과 304석의 공연장 2곳을 갖췄다. 총사업비는 1148억원이다. 부천아트센터의 건설관리(음향컨설팅)을 담당한 김남돈 건축음향연구소 대표는 “한국 오케스트라는 거의 객지 생활을 한다. 자기 집이 없으니 그 소리가 그 소리”라며 “고유의 홀, 고유의 소리를 가지면서, 지역에서도 사랑받고 경쟁력이 높아지는 오케스트라가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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