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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인종범죄 역대 최고사상…범행전 180쪽 계획문 올린 18세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시 슈퍼마켓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흑인 11명 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18세 백인 남성 페이턴 젠드론이 법원에 출석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4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시 슈퍼마켓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흑인 11명 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18세 백인 남성 페이턴 젠드론이 법원에 출석했다. [AP=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시간) 무차별 총격으로 흑인 11명 등을 죽거나 다치게 한 18세 백인 청년이 유색 인종 혐오와 반(反) 이민정책 등 극우 성향의 음모론에 심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이민으로 인한 비(非)백인 인구 증가는 백인과 서구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는 '인종 대교체 이론(Great Replacement 또는 Replacement Theory)을 신봉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이 15일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연례 순직 경찰 추도식 연설에서 "아직 사실관계를 수집 중이지만, 법무부는 이미 이 문제를 인종 혐오 범죄, 인종적 동기가 있는 백인우월주의 행동, 폭력적인 극단주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영혼에 오점으로 남아 있는 증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성명을 통해 "인종적 동기에 의한 증오 범죄는 혐오스러운 일"이라면서 "혐오스러운 백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행해진 행위를 포함한 모든 국내 테러 행위는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증오를 먹고 사는 국내 테러를 종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오는 17일 사건이 일어난 뉴욕주 버펄로시를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주민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20~24일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 범죄가 발생하자 현장을 방문해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미국 역사상 사상자가 가장 많은 인종 혐오 범죄 중 하나로 꼽힌다. 흑인 9명이 숨진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교회, 11명이 사망한 2018년 피츠버그 유대교 예배당, 라틴계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20명 이상을 숨지게 한 2019년 텍사스주 엘파소 월마트 총격 사건 등과 피해 규모가 비슷하다.

지난해 고교를 졸업한 페이턴 젠드론은 토요일인 지난 14일 오후 버펄로시의 한 수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했다. 주차장에서 4명을 쏜 뒤 매장 안으로 들어가 9명을 추가로 저격했다. 총에 맞은 13명 가운데 10명이 숨졌다. 미국 공영방송 NPR은 13명 가운데 흑인은 11명, 백인은 2명이라고 전했다.

젠드론은 집에서 320㎞ 넘게 떨어진 이 수퍼마켓까지 운전해 와 범행을 저질렀다. 이 지역을 목표물로 삼은 이유는 흑인 밀집 거주지역이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젠드론이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180쪽 분량의 선언문에는 백인 거주 지역인 자신의 집에서 가까우면서 흑인 거주자 비율이 높아 이 지역을 선택했다고 썼다. 사용할 총기 종류와 당일 일정표, 점심 먹을 장소를 포함해 가능한 한 많은 흑인을 살해하기 위한 신중한 계획서를 작성했다고 NYT는 전했다. 젠드론의 단독 범행으로 좁혀지면서 정부에 대한 반감이나 극단주의 단체의 이데올로기나 신념에 동조해 테러를 저지르는 '외로운 늑대' 범죄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젠드론은 미국의 백인 사회와 문화가 유색인종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데 대한 불안감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심을 담은 글도 남겼다. 미국이 유색인종 이민을 확대해 비(非) 백인 인구를 늘려 백인과 서구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는 극우 보수진영의 음모론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지지자인 터커 칼슨 폭스뉴스 앵커는 지난해 방송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국경 정책은 미국의 인종 비율을 바꾸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젠드론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가 총을 자신의 목에 겨눴다가 투항했다. 1급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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