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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세진 K방산…미군도 K9 자주포 쓰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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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신촌동에 있는 한화디펜스 제1사업장. 축구장 10개 넓이(5만8500㎡)의 초대형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가로 4.5m, 세로 3.5m의 대형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국방’이면서, ‘산업’인 방위산업(방산) 업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태극기 왼편에는 ‘위장 도색’ 직전의 K9 자주포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K9 자주포 한 대에는 700조각의 방탄강(총탄을 막기 위해 표면을 단단하게 만든 강재)이 들어간다. 조각을 이을 때마다 안팎으로 총 6번의 용접 과정을 거친다. 굵직한 용접은 로봇이 하지만, 틈새 용접은 차체를 작업하기 편한 위치로 들어 올린 후 사람이 직접 한다. 용접에만 달포(45일)가 걸린다.

용접이 끝난 차체는 레이아웃 머신으로 이동해 오차를 측정한다. 이어 총 설치 비용이 18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플라노밀러(가공 설비)로 옮겨져 정밀 가공에 들어간다. 이런 자동화를 통해 K9 자주포는 해외 경쟁사 대비 비슷한 성능을 갖추면서도, 원가를 절반 수준으로 낮춰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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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실험을 통과한 ‘파워팩(엔진과 변속기 결합 부품)’ 등 부품이 장착되면 한 대의 자주포가 완성된다. 이 회사 김종윤 구매기획팀장은 “부품 2800여개를 장착하는 데 100여일이 걸린다”며 “공장 안에 마련된 자체 시험장에서 주행·작동 시험을 거치고 나서야 수출길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렇게 만들어지는 자주포의 대당 가격은 약 40억원. 현재까지 누적 수출액만 5조원에 달하는 K-방산의 일등공신이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는 지난해 70억 달러(약 8조9900억원)어치의 계약을 따냈다. 5년 전 25억6000만 달러(약 3조2900억원)였던 점을 고려하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안영수 항공전략연구원장은 “국내 방산업체는 군과 계약 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군 납품이 끝나면 갑자기 ‘매출 절벽’이 오는 문제를 겪어 왔다”며 “이런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K9 자주포도 2020년 방위사업청과 납품 계약이 종료된 이후 수출만이 유일한 살길이 됐다. 지난해 수출 계약을 맺은 이집트를 포함해 지금까지 8개국과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디펜스는 현재 ‘레드백(호주 독거미)’ 사업 수주에 뛰어든 상태다. 레드백은 K21 장갑차를 기반으로 호주 현지의 조건에 맞춰 개발한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다. 호주 정부는 181억 달러(약 23조원)의 예산을 잡아놨다. 현재 한화디펜스와 독일 라인메탈이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 업계는 올 하반기 한화가 수주에 성공하면 10조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9 자주포와 함께 천궁Ⅱ(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 FA-50을 포함한 고등훈련기 T-50(한국항공우주산업·KAI), 1400t급 잠수함이 방산 분야의 ‘수출 4스타’로 불린다.

이 가운데 천궁Ⅱ는 올 초 아랍에미리트(UAE)와 4조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단일 유도 무기 수출로는 최대 규모다. KAI는 T-50 계열 수출로 누적 3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KAI 측은 “수출국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올해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에 추가 수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40억 자주포 1대 수출하면 협력사에 26억, 방산 생태계도 탄탄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부터 1400t급 잠수함 6척(인도네시아 등)과 군수지원함 등 군함 6척(영국·노르웨이)을 수출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누적 수출액이 36억 달러(약 4조6200억원)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K방산의 핵심 경쟁력은 가성비(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라며 “K9 자주포는 자동화, 천궁Ⅱ는 현지 수요를 반영한 개발·생산의 현지화, T-50은 원자재 대량 구매, 잠수함·군함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해 원가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K방산의 수출 영토가 더 넓어지고 있다. 한화디펜스는 영국 자주포 획득 사업, 미국 사거리 연장 자주포 사업, 미국 차세대 보병전투차량 획득 사업 등에 도전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K2 전차로 노르웨이와 폴란드 수출을 노리고 있다. 안영수 원장은 “선진국 눈높이에 맞는 첨단 무기를 생산하면서 K방산의 체급이 확 커졌다”고 말했다.

수출길이 열리면서 방산 생태계도 탄탄해지고 있다. 자주포 한 대(40억원)를 팔 때마다 1·2차 협력업체엔 26억여원이 돌아간다. 예컨대 자주포에는 STX엔진이 생산한 엔진과 SNT중공업의 변속기가 일체형(파워팩)으로 들어가는데, 이 가격만 8억원에 이른다.

연 매출 650억원 규모의 영풍전자는 K9 자주포(송탄·조종탄 제어기)와 탄약 운반차인 K10(수직·수평·적치 제어기)에 부품을 공급한다. 이 회사 류하열 대표는 “방산은 몇십년을 내다보고 해외 마케팅에 투자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력이 없다”며 “완제품 생산 업체를 통한 부품 수출로 안정적인 연구·개발(R&D)과 매출 증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견 제조업체인 지성큐앤택은 전체 매출의 약 3분의 1을 다연장 로켓포 천무와 천궁Ⅱ에서 올린다. 이 회사 박희석 대표는 “국내 납품 계약이 끝난 후부터 개량 무기 양산 때까지 중소기업은 험로를 걸어야 한다”며 “이 기간에 정부가 최소한의 수요를 이어가는 한편 수출 활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방산업계도 체질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위원은 “정부의 외교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방산기업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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