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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뼈 날리자 헬멧 쓰고 찰칵…재키도 치를 떤 '악명의 셀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론 갈렐라. 심장병으로 91세를 일기로 사망한 전설적이고도 악명 높은 파파라치. AP=연합뉴스

론 갈렐라. 심장병으로 91세를 일기로 사망한 전설적이고도 악명 높은 파파라치. AP=연합뉴스

셀럽 사진을 찍다가 스스로 셀럽이 된 남자, 론 갈렐라(1931~2022). 그는 세계 최초의 파파라치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타계한 그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4일(현지시간) 부고 기사로 집중 조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매주 최근 운명을 달리한 이들 중 족적을 남긴 1명을 선정해 전면 기사로 부고를 싣는다.

갈렐라의 공식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셀럽 사진작가 론 갈렐라”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갈렐라는 그러나 유명하기 보다는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셀럽 사진을 찍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갈렐라 때문에 일상 생활이 어렵다”며 그를 고소했고 법원은 이를 인정해 접근 금지 명령까지 내렸다. 말런 브랜도에겐 주먹으로 맞아 턱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갈렐라가 아니었다. 그는 브랜도 앞에 또 나타나 셔터를 눌렀다. 헬멧을 쓴 채로.

론 갈렐라가 썼던 헬멧. 그의 홈페이지 사진이다. [Ron Galella 공식 홈페이지]

론 갈렐라가 썼던 헬멧. 그의 홈페이지 사진이다. [Ron Galella 공식 홈페이지]

스타들은 그에게 치를 떨었지만 대중은 그가 포착해낸 순간에 환호했다. 그의 작품 일부는 현재 유명 갤리리에 전시 돼있다. 뉴스위크는 그를 ‘뛰어난 파파라초(paparazzo, 파파라치의 단수형)’라고, 가디언 등 외신은 그를 “파파라치의 대부(代父)’로 부른다.

그가 사진기를 처음 잡은 건 6.25와 연관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그는 6.25에 미 공군 소속으로 참전했는데, 휴가 중 우연히 카메라 수리를 배웠다고 한다. 당시 파파라치라는 직업군은 본격 등장하지 않은 때였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파파라치라는 단어가 첫 등장한 건 유명 이탈리아 영화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1961년 작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다. 그러나 이를 은막이 아닌 현실에서 실제 생계로 삼은 최초의 인물 중 하나가 갈렐라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그는 관 짜는 일을 생업으로 하던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어지간히 다혈질이었다고 한다. 항상 싸우던 부모님 사이에서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던 존재가 그의 반려 토끼였는데, 아버지가 홧김에 토끼 스튜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론 갈렐라의 한창 때였던 1982년 사진. 자신이 촬영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등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Ron Galella 공식 홈페이지, Copyright Betty Burke Galella]

론 갈렐라의 한창 때였던 1982년 사진. 자신이 촬영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등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Ron Galella 공식 홈페이지, Copyright Betty Burke Galella]

어린 시절 그는 자신감보다는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그의 영어는 이탈리아어 억양이 강렬했고 불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영향도 있었다고. 그러다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게 사진이었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 뒤 아르바이트로 영화배우들 사진을 몰래 찍는 일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파파라초로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가 특히 천착한 피사체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즉 재키(Jackie)다. 이코노미스트는 재키가 “미스터리에 싸여 있고, 쉽게 틈을 주지 않지만 사진이 찍히는 매 순간 포토제닉한 완벽한 피사체”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갈렐라는 생전 『재키에 집착하다(Jackie, My Obsession)』이라는 책도 펴냈다. 출판사는 홍보 자료에서 “갈렐라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재키의 수많은 아름다운 사진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슬비 내리는 뉴욕 거리를 걸어가다 갈렐라를 향해 뒤를 돌아보는 재키의 사진은 명작으로 꼽힌다.
갈렐라는 재키를 찍기 위해 거의 매일 그의 집 앞에 잠복했고, 레스토랑에선 코트 걸이 뒤에 숨었으며, 휴가 중엔 크루즈선의 선원으로 위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갈렐라는 재키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결혼도 재키의 목소리를 닮은 여성과 했다”고 적었다.

론 갈렐라가 쓴 책 표지. 재키에 대한 그의 열정 또는 집착을 솔직히 적었다. [출판사 공식 사진]

론 갈렐라가 쓴 책 표지. 재키에 대한 그의 열정 또는 집착을 솔직히 적었다. [출판사 공식 사진]

그런 갈렐라가 재키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셔터를 안 눌렀던 유일한 날이 있다. 재키의 첫 남편 존 F 케네디 미국 35대 대통령의 장례식이었다. 재키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케네디의 장례식이 엄수되는 상황에서 갈렐라는 카메라를 갖고 가긴 했으나 사진은 찍지 않았다고 한다. 재키에 대해 그가 표한 예의였다. 그런 그의 장례식은 이달 초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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