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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민들레 혐오하지 않듯, 조물주가 가장 사랑하는 게 다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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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왼쪽부터 임보라, 유연희 목사. 두 사람이 손에 든 책은 『퀴어 성서 주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왼쪽부터 임보라, 유연희 목사. 두 사람이 손에 든 책은 『퀴어 성서 주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날이자, 이를 기념해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높이고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는 행사가 열리는 때다.

국내에서도 사단법인 신나는센터(이사장 김조광수)가 주최한 ‘프라이드 갈라’가 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다. 축하공연과 함께 성소수자 권익 증진에 앞장선 이에게 주는 ‘프라이드 어워드’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 상의 2019년 첫 수상자는 고 노회찬 의원. 올해는 7년 걸려 두 권의 『퀴어 성서 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을 펴낸 ‘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위원회’가 받았다. 코로나19로 관련 행사가 3년 만에 열려, 두 번째 수상자가 됐다.

수상자 중 유연희(61·미국 연합감리교회), 임보라(54·섬돌향린교회) 목사를 만났다. “제가 20대 때 교회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 등 성소수자는 낯선 존재가 아니었어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일부 기독교인이 반대하는 걸 보며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2008년부터 관련 토론회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임 목사 말이다.

구약성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유 목사는 1980년대 후반 미국에 유학하며 성소수자를 접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보니, 가장 핍박받는 사람이 퀴어 크리스천이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식으로든 이들한테 도움이 되는 사역을 해야겠다고 항상 생각했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번역을 추진한 『퀴어 성서 주석』은 서구 목회자·신학자들이 여성과 성소수자 등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설한 책이다. 2006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 두 권 합쳐 1300쪽(한국판 기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2015년 임 목사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고 초벌 번역에 자원한 이들과 감수를 맡은 신학자까지 32명이 참여했다. “번역에 참여한 분 중에 당사자(성소수자) 분들이 있는데, 어떤 분은 울면서 번역했다고 해요. 활자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라고 절절히 느끼며 번역했다는 분도 계셨고.” 임 목사 말이다.

한국어판 첫머리에는 “조물주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이 다양성”이라며 “장미가 민들레를 혐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듯이, 모든 차이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며 존중받을 일이지, 결코 혐오나 차별의 조건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다. 교단 일각에선 이 책을 금기시했지만, 지난해 초 1권의 소셜펀딩이 목표액(500만원)의 878% 달성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유 목사는 젊은 세대 중심으로 교인들 인식이 변화하는 것에 비해 교단의 보수적 시각이 “과잉 대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올 초 발표한 개신교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42.4%)이 반대(31.5%)보다 많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 시각이 바뀔지 묻자 임 목사는 “더디지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199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이 여성 목사 안수를 통과시켰습니다. 한국 감리교는 50년대부터, 저희 한국기독교장로회는 70년대부터 여성 목사 안수를 했어요. 반대했던 성서학자들이 근거로 댄 것이 ‘성서에 금지돼 있다’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논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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