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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상식'의 나라 여는 尹…"싸울 시간 없다, 협치가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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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1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슬로건이다.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지난해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던졌던 그가 딱 1년하고 68일 만에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식 단상에 서게 된다.

그가 천명하는 새로운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취임사에 담길 핵심 키워드인 자유ㆍ시장ㆍ공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이 키워드를 원칙으로 할 일에 집중하고 성과로 평가받겠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주말,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정치권의 논쟁에 휘둘리지 말자. 이제부터 우리는 일에만 집중하자. 국민께 성과물로 평가받는 정부가 되자”고 독려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사법정책 공약을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사법정책 공약을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 국회사진기자단

당선인 신분의 마지막 날로, 취임을 하루 앞둔 9일에도 윤 대통령은 종일 바쁘게 ‘할 일’을 하며 보냈다. 15개 부처 차관 20명의 인선을 발표한 뒤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아만다밀링 영국 외교부 아시아 담당 국무상, 사파예프 우즈베키스탄 상원1부의장,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를 차례로 접견했다. 특히, 영국의 밀링 국무상을 만난 윤 대통령은 “한국과 영국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싸웠다. 1950년 공산 침략을 받았을 때 1000여명이 넘는 영국 청년이 이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혈맹의 관계가 양국 모든 관계의 기초”라며 사례했다. 자유란 키워드는 이렇듯 다방면에서 그의 핵심 가치로 작용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대선 때 지지해준 재외국민 단체가 마련한 리셉션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이후 용산 대통령실의 ‘지하벙커’로 이동했다. 이 자리에서 ‘0시’를 기해 군 통수권자로서의 첫 일정으로 합동참모본부의 보고를 받으며 대통령으로서의 집무를 시작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에게 “국민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모습의 취임식을 준비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하는 등 윤 대통령은 국민과 가까이 소통하는 대통령을 꿈꾼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국회 입구에서 내려 180m가량을 도보로 이동한다. 단상 바로 앞까지 차량에 탄 채로 진입하던 전임 대통령들과 다른 점이다. 단상에서 계단을 내려와 ‘낮은 곳’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취임사를 발표한다. 취임식 후 별도 카퍼레이드 없이 곧장 집무에 돌입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처럼 그가 그리는 ‘좋은 대통령’의 모습은 얼개가 잡혀가지만,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170여석 거대 야당과의 협치부터가 숙제다. 당장 윤 대통령은 취임하지만, 총리조차 없는 반쪽 출발이다. 새 정부의 공약을 구현하기 위한 법안은 단 하나도 예외 없이 야당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원활하게 국정을 이끌기 위해서라도 야당을 적이 아니라 국정 파트너로 여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꽉 막힌 여의도 정치를 풀어내는 것이 윤 대통령이 넘어야 할 첫 번째 파도라는 얘기다.

연장선에서 편 가르기가 극에 달했던 지난 대선의 후유증을 치유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출신 고위 인사는 “대선 때의 투표 결과로 정권 심판론은 정리된 셈이다. 이젠 갈라진 민심을 아우르며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축인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가야 한다”며 “지지율을 의식해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는 일방통행은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자신도 후보 시절 협치를 강조한 바 있다. “여소야대 상황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훨씬 성숙해 갈 기회”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들의 고언은 한마디로 싸울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그만큼 한국 경제가 엄중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고환율ㆍ고금리ㆍ고물가라는 ‘3고’ 경고음 속에 출항한다. 정부와 가계부채 모두 요란한 경고음을 내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 19 피해 보상문제와 부동산 시장 안정화, 연금개혁 문제 등의 국정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9조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수위 관계자는 “재정 지출 구조조정과 경제 성장에 따른 세수 증가 등을 통해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지만, 장밋빛 기대에 머물 수 있다.

여기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를 야기해온 북한의 도발 징후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뚜렷해지는 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안보 위기 상황도 여전하다. 정 전 의장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북핵 위기를 관리하는 것은 한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어려운 임무”라고 말했다.

이런 다층적 위기 상황에서 집무를 시작하는 윤 대통령이지만, 그만의 자산도 있다. 정치 신인으로서 갚아야 할 정치적 부채가 없고, 소탈한 모습으로 대중 스킨십에 강하며, 공정과 상식이라는 브랜드가 확실하다는 점이 그렇다. 김형오 전 의장은 이런 장점을 언급하며 “측근 그룹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적재적소에 인사를 잘 배치하느냐가 초반 국정운영의 승부처”라며 “나라와 국민을 위해 끊임없이 대국민 소통을 해간다면 결국엔 위기 상황을 딛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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