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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바다, 선장·선원만 사라졌다…백령도 어선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천해양경찰서 경비함정이 실종된 어선의 선장과 선원을 찾기 위해 백령도 인근 해상을 수색하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인천해양경찰서 경비함정이 실종된 어선의 선장과 선원을 찾기 위해 백령도 인근 해상을 수색하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지난 2일 오후 5시 30분쯤 인천해양경찰서로 한 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4.97톤급 어선이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인근 북방 3.7㎞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가까이 표류한 어선을 보고 인근을 순찰하던 해군이 신고한 것이다.
현장으로 출동한 해경은 배 안을 살폈다. 선장과 선원은 보이지 않았다. 해경은 인근 백령도 항구로 배를 옮기는 한편 경비함정 등을 동원해 인근 해상을 수색하고 있다. 그러나 8일 현재까지 선장 등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닻 작업’하러 출항한 선장과 선원 

이 어선은 지난 2일 오후 1시 55분쯤 백령도 장촌항에서 출항했다. 60대 선장 A씨와 인도네시아 국적의 30대 선원 B씨가 타고 있었다. A씨는 출항 전 해경 백령파출소에 승선 인원을 2명으로 신고했다. 항구 일대 폐쇄회로 TV(CCTV)에도 A씨와 B씨가 배에 타는 장면이 담겼다.

하지만 이들은 배 안에 없었다. 조타실에선 A씨의 휴대전화가 발견됐다. 선원 B씨의 휴대전화는 숙소에서 발견됐다.

A씨는 지인들에게 “닻 작업을 하러 나간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어선이 그물을 치기 전 어장을 표시하기 위해 바다 곳곳에 대형 닻을 떨어뜨려 놓는 작업이다. 배 안에선 조업에 쓰는 그물 등이 발견됐다. 해경은 이들이 출항 전 배 안에 몇 개의 그물을 싣고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잔잔했던 그 날 바다, 파손 흔적도 없다

이들이 출항할 당시 백령도 바다는 풍속 4~8m/s, 파고 0.5m 정도로 잔잔했다. 날씨도 맑았다. 높은 파도에 휩쓸렸거나 안개 등 기상 문제로 다른 배와 충돌하는 수난사고 가능성은 없다는 거다. 어선에선 파손되거나 침수된 흔적도 없었다.

해경은 이들이 닻을 풀어서 내리는 과정에서 실족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닻 무게가 상당해 대부분 2명 이상이 작업한다고 한다. 작업 중 한 명이 바다에 빠지자 다른 사람이 구하기 위해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해양경찰 이미지. 중앙포토

해양경찰 이미지. 중앙포토

그러나 A씨는 오래전부터 백령도 앞바다에서 조업한 베테랑이다. 닻이 무거워도 숙련된 뱃사람은 혼자 작업 할 수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선원 B씨의 신원은 애매하다. 이들의 실종 직후 해경이 확인한 선원 명부에는 B씨가 아닌 우리나라 국적의 다른 선원 이름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이 선원은 1년가량 전부터 배를 타지 않았다. 해경 관계자는 “선원이 바뀌면 바로 신고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해경은 B씨의 신원과 언제부터 이 어선에서 일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해경 “닻 작업 중 실종됐을 가능성 커”

해경은 조타실에서 발견된 A씨의 휴대전화와 육지 숙소에 있던 B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이 선박이 NLL 인근에서 발견된 만큼 이들이 북한 해역으로 떠내려갔을 확률이 있다고 추정하고 통일부를 통해 북측에 이들의 실종 사실을 알렸다.

해경 관계자는 “과거 조업 기록을 살펴본 결과 이 선박은 주로 백령도 남쪽에서 조업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선장과 선원의 실종된 이후 배가 조류 등을 타고 백령도 북쪽에 있는 NLL 인근까지 표류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월북 가능성은 없다는 설명이다.
해경은 해경 경비함정 등 10여척을 동원해 이들의 행방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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