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미사일에서 시작해 미사일로 끝낸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2022.05.06 00:26

업데이트 2022.05.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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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재인 정부 5년 남북관계 돌아보니…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이 지난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관계 활동을 담은 83페이지 분량의 화보(사진첩)를 공개했다. 인터넷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서다. 『북남관계의 대전환 2018』이라는 제목의 화보는 2018년 한 해 동안 남북관계의 훈풍을 담은 122장(남북합의서 사진 제외)의 크고 작은 사진을 실었다.

북한은 특정한 계기에 화보를 발간하곤 한다. 지난달 14일 하루에 각각 김일성 주석 110회 생일(4월 15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80회 생일(2월 16일)을 기념하는 화보를 펴냈다. 이렇게 보면 이번 화보는 자신과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는 것을 기회로 봤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 정부를 향해 쏟아부었던 막말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다. 김 위원장의 ‘입’이라는 김여정 당 부부장 등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재인 정부를 “저능하다” “역겹다”라거나 심지어 “삶은 소대가리”라는 비속어를 써가며 공격했다. 2020년 6월엔 2년 전 남북정상회담의 산물인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도 했다. 북한이 ‘대전환’이라고 규정한 2018년이 무색할 정도다.

문 정부 출범 4일 만에 화성-12형
정권 마무리 6일 전까지 미사일

5년간 51발, ‘한반도의 봄’ 희석
직접적 군사충돌 없었던 건 성과

북,‘대전환 2018년’ 화보집 발간
한국 새 정부와 무력대치 가능성

‘극과 극’ ‘반전에 반전’

북한의 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 요원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심야열병식에 참석해 소총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보기관 요원들이 공개 행사인 열병식에 참석한 건 이례적이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 요원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심야열병식에 참석해 소총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정보기관 요원들이 공개 행사인 열병식에 참석한 건 이례적이다. [노동신문=뉴스1]

임기 종료를 나흘 남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간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빛과 그림자가 명확한 ‘극과 극’ ‘반전에 반전’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의 봄’이라고 불렸던 2018년의 남북관계는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5월 26일 판문점에서 열린 4차 남북정상회담(문재인 정부 2차)은 전날 두 정상이 통화하다 “이러지 말고 내일 만나서 얘기합시다”라고 해 열린 ‘번개 정상회담’이었다. 대북제재로 인해 여객기 운항이 어려워지자,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공군 화물기 2대가 방북 인사들을 태우고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했다.

김 위원장이 방북한 특사단에 비핵화 의지를 내비치고, 한국과 서방 기자들을 불러 모아 핵실험장을 폭파한 장면은 30년 가까이 끌어온 북한의 비핵화가 드디어 실현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이 “오랜 시간 준비한 것이니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극적인 반전의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장밋빛 서광도, 한반도의 봄도 허망하게 사그라들었다. 북한과 미국은 이후에도 스웨덴과 판문점에서 접촉을 이어 갔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직접적인 군사충돌은 없었지만 ‘내 갈 길 가겠다’는 북한의 태도 변화로 상황은 또 반전됐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동원한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14차례 미사일을 쐈고,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핵선제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5일 열린 열병식에서 “각이한 수단으로 핵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핵이 전쟁방지라는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면서다.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예고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4일 만인 2017년 5월 14일 화성-12형을 시작으로 이후 그해 연말까지 11차례의 미사일을 쐈다. 화성-14, 지대함, 지대공, 신형 유도탄을 총동원했다. 집권 4개월 만인 9월 6일엔 수소폭탄급 핵실험을 했다. 그해 11월 29일 53분간 비행한 화성-15형을 쏘고 나선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그런 뒤 내심 핵보유국을 자처하며 미국과 협상에 나섰던 것이다.

물거품된 문 정부의 종전 선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는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기 위해 종전선언에 집중했지만 북한의 답은 미사일 발사뿐이었다. 한·미군이 요격하기 어려운 극초음속 미사일이나 북한판 이스칸데르·에이테큼스를 비롯해 초대형 방사포를 쏘아댔다. 북한은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14차례와 5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해도 7차례였다. 지난 4일 등 올해 14번을 포함하면 지난 5년간 북한이 꺼낸 미사일 카드는 공식확인된 것만 51차례다.

결국 문재인 정부 5년의 남북관계는 미사일로 시작해 미사일로 끝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핵실험과 ICBM(1년차)→한반도의 봄(2년차)→하노이 회담의 결렬과 북한의 전술 미사일 시위(집권 3년차)→북한의 비난 고조와 한국정부의 종전선언 전력 투구(4년차)→화성-17형 발사 및 핵위협(5년차)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과 대화에 실패한 북한이 전략핵에서 전술핵으로, ICBM에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한국을 향한 군사적 위협이 갈수록 실제적이고, 뾰족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북한은 왜 미사일을 쏜 날 『북남관계의 대전환 2018』이라는 화보집을 냈을까. 화보집 속에 등장하는 소제목에서 북한의 속내가 읽힌다. 화보는 2018년 초 북한 선수와 응원단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애국애족의 대용단, 넓으신 포옹(용)력으로’라고 썼다. 그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 방북에는 ‘숭고한 동포애의 정’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 주시려’라고 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만 보자면 모든 치적을 김 위원장에 돌리려는 의도다.

문 대통령 평양 연설 안 실어

새  정부를 향해선 김 위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한반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주도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40장의 평양 정상회담(2018년 9월) 사진 중 문 대통령이 15만 명의 평양 주민들에게 연설하는 장면만 쏙 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정부는 문 대통령의 연설을 치적으로 삼지만, 북한은 ‘그렇게까지 환대했는데…’라며 섭섭해하는 장면이다.

북한이 같은 날 미사일과 함께 2018년의 상황만 담은 화보집을 이용해 ‘대전환’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대화냐 대결이냐. 양자택일하라’고 새 정부를 압박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먹힐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국정과제 110가지 중 외교·안보 분야는 18가지다. 이 가운데 외교부와 국방부 사안이 각각 8개인 반면, 통일부 소관은 남북관계 정상화와 인도적 문제 해결 도모 등 2개가 전부다.

무엇보다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새 정부는 ‘비핵·개방·3000’을 강조하며 대북 강경책을 밀어붙이던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이 주류다.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며 남북관계의 추진을 시도하기보다는 최소 ‘영변+α(알파)’가 돼야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반면, 김 위원장은 핵개발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 공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장외에서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자칫 제2의 천안함, 제2의 연평도, 제2의 목함지뢰 사건이 터지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양복에 소총 들고 열병식에 나온 264명은?
북한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열병식에 낯선 장면이 몇몇 등장했다. 이날 열병식은 50개 도보종대와 화성포-17형 미사일 부대 등 22개의 기계화 종대 등 모두 72개의 종대가 참가한 역대급 규모였다. 기존에 선을 보이지 않았던 부대가 참가했다는 의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의 민방위인 노농적위군의 뒤를 이어 양복 차림의 소총을 들고 등장한 264명(지휘관 제외)의 종대다. 열병식 다음 날(지난달 26일) 녹화로 방영된 영상(위 사진)에서 이춘희 아나운서는 “수령 보위의 성벽을 떠받드는 하나하나의 성돌이 될 결사의 의지, 전진하는 대오”라며 “성스러운 사명을 지닌 미더운 국가보위성 종대가 정경택 대장의 인솔하에 열병행진을 한다”고 소개했다.

국가보위성은 북한의 정권 수립 이전인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보안국으로 출범한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유사한 정보기관이다. 정보 수집과 간첩 색출 업무는 물론 북한 주민의 동향을 일일이 감시하며 체제 위해세력을 제거하는 게 임무다. 북한 주민들에 경계의 대상이다. 남북대화나 방북한 남측 인사들을 감시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그래서 보위성원들은 보위상(정경택) 등 공식적으로 알려진 인물을 제외하곤 가명을 쓰거나 얼굴이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린다.

때문에 이날 국가보위성의 열병식 참가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어느 국가이건 정보기관 종사자들은 신분 노출을 꺼린다”며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대내 결속을 과시하고 축제의 장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체제 유지와 관련된 모든 조직을 동원하는 차원에서 얼굴을 공개해도 상관없는 보위성원을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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