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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만에 尹 무리수 수사 인정…공수처 정치개입 4가지 장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월 4일 점심시간 김진욱 공수처장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5월 4일 점심시간 김진욱 공수처장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4일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핵심 사실 관계인 고발장 작성자 등 원출처도 밝히지 못한 채 8개월여에 걸친 수사를 마쳤다. 공수처는 하지만 당시 야당 후보자이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걸 두고 “총선개입 범죄”라며 손준성 검사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 논란을 사고 있다. 당초 손 검사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 부하 검사들에게 고발장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보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를 집중했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결국 무혐의 처분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가 수사 개시부터 종료까지 끊임없이 야당 대선 주자인 윤석열 당선인을 겨냥해 정치 개입 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 후폭풍에 따른 비판이 공수처에 쏠리는 걸 막기 위해 시민 공소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무죄 선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손 검사에 대한 선거법 혐의 기소를 강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그동안 공수처가 정치 개입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 장면 네 가지를 정리해봤다.

①첫 의혹제기 직후 특별한 증거 없이 윤석열부터 콕 찍어 입건

공수처는 지난해 9월 2일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의 첫 의혹 제기 보도 이후 일주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입건했다. 뉴스버스 보도 나흘 뒤이자 입건 사흘 전인 같은 달 6일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윤 당선인과 손 인권보호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권순정 부산지검 서부지청장 등 4명을 고발하자 이 중 윤 당선인과 손 인권보호관만 선별해 입건한 것이다.

특히 윤 당선인은 사건 발생 당시 검찰총장이었다는 점과 손 인권보호관을 참모로 두고 있었다는 점 외엔 사건과의 특별한 연결 고리가 없었기 때문에 무리한 입건 논란이 일었다. 입건 당시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의 대선 예비후보였던 점에선 대선 개입 논란으로 확대됐다.

공수처의 배경 설명은 논란을 부채질했다. 윤 당선인 입건 다음 날 공수처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언론에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손 인권보호관)은 검찰총장의 오른팔이라고 하지 않았나. 윤 전 총장도 (기자회견에) 나와서 ‘나를 수사하라’라고 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입건할 만한 근거가 언론 보도, 시민단체 고발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공수처는 이달 4일 수사결과 브리핑에서도 윤 당선인을 성급하게 입건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윤 당선인 수사를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수사팀 관계자는 “현재 단계에선 수사의 상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②민주당에서 수사 촉구할 때마다 손준성 영장 청구…전부 기각

공교롭게도 공수처는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낼 때마다 바로 손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 및 구속영장을 구속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여권의 정치적 입김에 따라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한 셈이다.

우선 지난해 10월 18일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 박주민 민주당 총선개입 국기문란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단장, 민병덕 부단장, 김남국·황운하 의원이 공개적으로 공수처를 찾아 윤 당선인을 추가 고발한 적 있다. 그러자 공수처는 이틀 뒤인 20일 손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 체포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공수처는 이례적으로 체포영장을 건너 뛴 채 지난해 10월 23일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5일엔 기자들에게 영장 청구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영장이 연거푸 기각당하고 “모든 피의자에 대해 무혐의로 수사가 마무리될 전망”이라는 보도가 잇따르자,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검증특위의 민병덕·김용민·박주민·전용기 의원이 지난해 11월 25일 공수처를 방문해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의 김웅·정점식 의원 등을 추가 고발했다. 그러면서 “고발장 작성과 전달 과정에 다수의 검사를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밖에 없다”라며 “윤 후보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건 말도 안 되고 분명한 부실 수사”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닷새 뒤인 30일 손 인권보호관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 역시 법원에 의해 기각당했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1차 구속영장 기각 때와 같은 이유였다.

5월 5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5월 5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③여운국, 수사 도중 민주당 의원과 통화하고 저녁약속 잡아

공수처는 지난해 10월 말쯤 고발사주 의혹 수사팀의 주임검사를 여운국 차장으로 재지정하며 거의 모든 수사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는데, 그 직후인 11월 초 여 차장은 박성준 민주당 의원과 전화 통화를 하고 “11월 22일쯤 저녁 식사를 하자”라는 약속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의원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데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변인이기도 했다. 다만 이 사실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자 실제 저녁 식사 자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법조계에선 “야당 대선 후보를 겨냥한 수사의 주임검사가 여당 대선 후보 캠프 소속이자 법사위에도 소속된 의원과 이런 식으로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부적절하다”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④손준성 영장기각 뒤 5개월 조용하다 ‘검수완박’ 직후 결과발표

공수처가 수사 결과를 발표한 시점(5월 4일)도 공교롭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날인 3일 더불어민주당이 강행처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공포되자 당일 “다음 날 ‘고발사주’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며 일정을 잡은 점을 놓고서다.

공수처가 손 인권보호관에 대한 영장이 연이어 기각된 지난해 12월 초 이후 5개월가량 동안 특별한 움직임 없이 사실상 수사를 중단했던 점을 고려하면 의문을 증폭시킨다. 수사결과 브리핑장에서 “5개월가량 동안 무슨 수사를 했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해 말 불거진) 통신사찰 논란과 관련해 태스크포스(Task Force)가 가동되는 등의 복합적인 일이 있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공수처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검찰 견제이고 검수완박의 목적 역시 검찰 견제라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검찰에 집중되게 할 목적으로 검수완박 흐름에 발을 맞춘 게 아니냐”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여권의 주도로 검수완박이 공포된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자 공수처가 손 인권보호관 기소 내용의 수사 결과 발표로 물타기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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