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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강' 울산에 2연승, 조호르를 보면 동남아 축구가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 현대에 2연승을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말레이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 선수단이 울산전 종료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 현대에 2연승을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말레이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 선수단이 울산전 종료 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 울산 현대는 K리그1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꾸준히 정상권을 유지하는 강팀입니다. 이런 팀이 동남아시아 소속 클럽에게 두 번 모두 졌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울산의 부진일 수도 있지만, 동남아시아 축구가 가파르게 성장한 사실만큼은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과거 K리그 구단 사령탑을 지낸 A감독은 1일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리그서 탈락한 울산의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앞세워 나날이 경쟁력을 높여가는 동남아시아 축구를 더 이상 변방으로 여기고 무시해선 곤란하다는 충고다.

울산은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리그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말레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이하 JDT)과 I조 최종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 통한의 자책골을 내주며 1-2로 패해 16강이 겨루는 토너먼트에 출전하지 못했다. 재작년 이 대회 정상에 올랐고, 지난해에도 8강에 오른 울산은 올 시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말레이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에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한 울산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말레이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에 패해 16강 진출에 실패한 울산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울산은 상대 팀 당 2경기씩 치른 본선 조별리그에서 JDT에 두 번 모두 1-2로 졌다. 울산 구단이 지난달 30일 공개한 자체 다큐멘터리(푸른파도) 영상에서 홍명보 울산 감독은 첫 번째 패배 직후 라커룸에 선수단을 모아 놓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게 팀이야?”를 외치며 의자를 걷어차는 등 평소 답지 않은 과격한 행동으로 선수들에게 자극을 줬다. 그럼에도 울산은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던 두 번째 맞대결마저 패배로 마무리했다.

사실상 홈 팀 역할을 했던 JDT가 거친 플레이, 편파판정 논란, 훈련장 배정 논란 등 비 매너에 가까운 텃세를 부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 편성 직후 I조에서 ‘꼴찌 후보’라 평가 받은 팀이 K리그1 선두(울산)와 J리그 선두(가와사키 프론탈레)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며 조 1위로 16강에 오른 결과는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울산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신바람을 낸 JDT는 최근 급성장하는 동남아시아 축구의 상징 같은 팀이다. 말레이시아의 조호르주(州)를 연고지로 1972년 창단해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조호르주 왕세자 툰쿠 이스마일이 구단주, 공주 툰쿠 아미나가 사장을 맡고 있다. 권역상 동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왕족이 운영하면서 파격적인 투자로 급성장한 중동 클럽의 성공 모델을 따른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 현대에 2연승을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말레이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푸른 유니폼). [사진 프로축구연맹]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 현대에 2연승을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른 말레이시아클럽 조호르 다룰 탁짐(푸른 유니폼). [사진 프로축구연맹]

지난 2012년 말레이시아 프로축구를 뒤흔든 승부 조작 스캔들이 외려 JDT 약진의 출발점이 됐다. 조호르FC를 비롯해 조호르 지역 연고 구단 여러 팀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자 왕세자 툰쿠 이스마일이 상황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지역 여러 구단을 인수·합병해 JDT로 통합한 뒤 자신이 구단주를 맡아 새 출발을 진두지휘했다.

JDT는 운영비를 파격적으로 끌어올려 수준 높은 자국 선수들과 외국인들을 줄줄이 영입했다. 유럽 빅 클럽을 이끈 경험이 있는 수준급 지도자를 줄줄이 데려와 지휘봉을 맡겼다. 외국인 선수들도 유럽과 남미의 빅 클럽 출신 또는 아시아 프로축구 무대에서 검증을 마친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다.

싱가포르리그 절대 강자 라이언시티는 K리그 구단과 영입 경쟁에서 승리해 한국인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영입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싱가포르리그 절대 강자 라이언시티는 K리그 구단과 영입 경쟁에서 승리해 한국인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영입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최전방을 이끄는 외국인 공격수들의 면면은 K리그 구단과 견줘 모자람이 없다. 과거 수원 삼성에서 뛰었던 브라질 공격수 베르손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명문 벨레스 사르스필드 출신의 레안드로 벨라스케스(아르헨티나), 왓포드(잉글랜드)와 우디네세(이탈리아) 등을 거친 페르난도 포레스티에리(이탈리아) 등이 활약 중이다.

2020년에는 4만 석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술탄 이브라힘 스타디움)을 새로 지었고, 유럽 구단 클럽하우스를 본뜬 훈련 시설도 추가했다. 파격적인 투자는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말레이시아 수퍼리그에서 이렇다 할 적수 없이 지난 시즌까지 8연패를 이뤘다. 2015년엔 그간 중동 팀이 독식해 온 AFC컵(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의 하위 리그)에서 동남아시아 팀 최초이자 유일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국제 대회 우승 이력을 추가했다.

일본팀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경기 도중 태클에 걸려 넘어지는 베트남 호앙아인잘라이 소속 공격수 콩푸엉(맨 왼쪽). [AFP=연합뉴스]

일본팀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경기 도중 태클에 걸려 넘어지는 베트남 호앙아인잘라이 소속 공격수 콩푸엉(맨 왼쪽). [AFP=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JDT 이외에도 아시아 곳곳에서 과감한 투자를 앞세워 ‘탈 동남아’를 외치는 축구 클럽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리그 유일의 기업형 구단으로, 한국인 김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라이언시티 세일러스는 K리그 못지않은 운영비를 투입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베트남 간판 클럽 호앙 아인 잘 라이는 팀 내 유망주들을 프리미어리그 구단 산하 유스팀에 유학을 보내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젖줄 역할을 도맡았다.

동아시아 프로리그 못지 않은 투자와 시스템을 겸비한 동남아시아 클럽이 점점 느는 건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리그에서 화두로 떠오른 동남아의 약진이 ‘깜짝 돌풍’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감독은 “올 시즌 K리그를 대표해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팀들이 모두 동남아 팀을 상대로 고전했다”면서 “이는 동아시아 프로축구에 보내는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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