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공공부문 개혁, 힘들어도 가야 할 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6호 30면

문 정부 공무원 12만9천명 늘려…역대 최고

세금 부담 커지고 민간 활력도 저하시켜

낙하산 인사, 강성 노조가 개혁의 걸림돌

‘유능하고 실용적인 정부’를 표방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27일 새 정부의 공무원 정원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청년세대의 채용기회가 줄어들지 않도록 매년 퇴직자만큼 신규 채용은 이어가겠다고도 했다.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가 부족한 고용시장의 현실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청년 구직자의 기대를 감안한 고육책이겠지만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새 정부가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작은 정부가 좋다는 미신을 끝내고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권 출범 이후 공무원 17만 명 증원을 포함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실행에 옮겼다. 현 정부는 이전 4개 정부 약 20년간 늘어난 공무원 수를 모두 합한 것(9만6571명)보다 더 많은 12만9000명의 공무원을 늘렸다.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분(5만2516명)을 감안해도 이전 정부보다 공무원 증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번 늘려놓은 공무원 정원은 줄이기 어렵다. 공무원 인건비도 갈수록 늘어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정부 공무원(지방직 제외) 인건비는 총 40조2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40조원을 넘어섰다. 연금 부담은 미래 세대의 어깨를 짓누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공무원연금 적자는 2017년 2조2820억원에서 매년 커져 지난해에는 3조2400억원으로 불어났다.

공무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내세우는 건 적절하지 않다. OECD 국가 중엔 초중등학교 교사나 어린이집 교사, 간병인 등 사회서비스 종사자를 공공부문에서 채용하는 국가가 많다. 반면 우리는 이런 일자리를 민간 부문에서 채용하고 국고에서 인건비를 지원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한국 공무원 숫자가 OECD 국가들보다 적다고 주장하는 건 현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공공기관도 비대해졌다. 한국은 OECD에서 공공기관이 가장 많은 나라다. 공공기관 수는 2017년 332개에서 2021년 350개로 늘었다. 현 정부 5년간 공공기관 인력 정원은 11만5091명(35%)이 늘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7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일자리 창출 노력’을 신설해 일자리를 늘리라고 독려했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정부가 조장한 셈이다.

공공부문이 커지면 세금만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각종 규제를 면제받고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자금까지 지원받는 공공기관이 판을 치면 민간의 경제 주체들이 성장하기 어렵다. 사회의 보상체계도 왜곡된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세태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유인체계 탓이 크다. 시험에 일단 통과해 자격증을 따기만 하면 철밥통이 유지되는 ‘자격사회’를 ‘기회사회(opportunity society)’로 바꿔야 한다.

역대 정부도 공공부문 개혁을 외쳤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건국 이래 공무원 수를 감축한 시기는 외환위기를 맞아 출범한 김대중 정부 때뿐이다.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는 민간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공공부문도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공공기관 선진화를 외쳤지만 구호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공무원 숫자는 현행 유지가 아니라 적어도 정년퇴직자 등 자연감축분은 줄이고 신규 채용은 필요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 공공부문 개혁이 성과를 내기 힘든 건, 정부의 낙하산 인사 관행과 강성 노조 탓도 크다. 낙하산 사장은 경영자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노조 눈치만 보게 마련이다. 공공기관 주인행세를 하는 강성노조는 국민 이익을 위한 공공부문 개혁에 저항해왔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 의지를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시대를 거스르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를 덥석 받아들였다. 새 정부의 출발이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 공공부문 개혁은 아무리 힘들어도 가야 할 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