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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파운드리 품질 논란, 주 고객사 대만 TSMC에 빼앗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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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02면

위협받는 삼성전자 ‘품질경영’ 

9만9150원. 외국계 투자은행(IB) 30곳이 삼성전자 주가에 기대하는 최근 ‘목표주가’ 평균치다. 올해 초 목표주가(9만8750원)와 차이는 0.4%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대만의 파운드리(위탁생산) TSMC와 미국 마이크론 목표주가가 각각 5% 이상 높아진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변동 없는 수준이다. 요즘 동학개미들 사이에서 “외국인들이 삼성전자에만 유독 가혹하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동학개미들의 한탄은 실제 외국인 매도세로도 확인할 수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치가 횡보하는 사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연일 매도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은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주식 1596만주(약 5조634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11.5% 하락했다. 반면 TSMC 주가는 같은 기간 5.4% 떨어지는 데 그쳤다. 4월 들어서도 외국인은 28일까지 4주 연속 삼성전자 주식을 쏟아냈다.

외국인 순매도 행진, 주가 크게 하락

이런 상황은 최근 불거진 반도체 업종의 부정적 전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올 들어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붕괴 등으로 반도체 업종 전반에 우려가 커졌다는 점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동일한 조건이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신흥국에서 달러 강세가 나타난 것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원화 가치가 5.7%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하는 동안 대만달러 가치도 6.2% 낮아졌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만달러는 원화와 함께 중국 위안화와 연동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한 블록통화”라며 “달러 강세는 원화를 포함한 주요 아시아 신흥국 통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한국 증시 대장주인 것도 특별한 ‘악조건’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패시브펀드(특정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종목을 담은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등은 시가총액 비중대로 투자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본격화할 땐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부담이 크다는 게 증권가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TSMC도 대만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이라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서로 닮은 두 회사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에 더 인색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최근 경쟁사들의 약진 속에 ‘품질제일’, ‘초격차’ 등 삼성전자를 상징하던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을 원인으로 꼽는다. 파운드리 시장에선 품질이 의심받고 있다. 품질 논란은 2월 삼성전자가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2의 성능 문제가 발단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생산할 때 파운드리 4㎚(나노미터, 1㎚=10억 분의 1m) 공정을 적용했다. 그러나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전 세대인 5㎚ 공정으로 생산한 AP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고, 갤럭시S22 구매자 1885명은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반도체 전문가 사이에선 삼성전자가 최신 공정을 활용하면서 수율(전체 생산품 대비 합격품 비율)을 안정화시키지 못한 탓에 품질이 일정치 못한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딜런 파텔 세미애널리시스 수석분석가는 “엑시노스2200의 동작(클럭) 속도는 개발 초기 목표한 1.69GHz에서 1.49GHz를 거쳐 1.29GHz로 계속 낮아졌다”며 “반도체 완성품 가운데 구동 성능이 설계 기준치에 도달하는 비율이 매우 낮아 일괄적으로 동작 속도를 낮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급기야 삼성전자 소액 주주들이 3월 주주총회에서 4㎚ 공정 수율을 묻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사장)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대신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안정화되고 있다”고 답했다.

논란이 이는 사이 반사이익은 TSMC가 가져갔다. 품질 논란이 한창이던 2월 퀄컴은 향후 3㎚ AP 생산을 삼성전자 대신 TSMC에 맡기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엔비디아도 올해 제품 생산 위탁을 삼성전자에서 TSMC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파운드리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핵심 고객사들이 몰리다 보니 TSMC는 1분기 호실적을 냈다”며 “파운드리 시장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입장에선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공식적으로 알려진 곳 외에도 이름 난 기업 대부분이 TSMC와 거래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TSMC의 올해 1분기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TSMC의 고성능컴퓨팅(HPC) 매출 비중(41%)이 처음으로 스마트폰(40%)을 넘어선 것이다. 이 분야의 주요 고객은 애플과 AMD, 인텔 등 시장에서 핵심 고객으로 분류되는 기업들이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HPC 등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TSMC 매출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TSMC가 공정·제품별 매출을 공개하며 자신감을 내비친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품질 문제에 조심스런 입장이다. 강문수 반도체 파운드리 부문 부사장은 28일 진행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4㎚ 공정은 예상했던 수율로 진입했다”며 말을 아꼈다. 대신 파운드리 부문 실적도 전년 동기 대비 35% 성장해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만큼 우려가 과도하단 입장을 전했다.

갤S22, 자사 AP 탑재 절반으로 줄여

삼성전자가 품질 논란을 종식시킬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자 시장은 퀄컴의 입에 주목했다. 파운드리 품질 문제의 발단인 갤럭시S22는 퀄컴의 AP ‘스냅드래곤8 1세대’와 삼성전자의 자체 AP ‘엑시노스2200’을 병용한 제품인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자사 스마트폰에 자체 AP를 얼마나 사용했을지를 통해 파운드리 품질 논란의 힌트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27일(현지시간) 진행된 퀄컴의 실적 발표에선 갤럭시S22 전체 물량 가운데 75%가 퀄컴의 AP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세대 제품인 갤럭시S21에선 40%였던 것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자사 AP 사용량이 60%에서 25%로 줄어든 셈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엑시노스2200의 탑재 비율 40% 선은 사수하길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예상보다 낮은 수치”라며 “자사 AP가 이 정도라면 외부 기업을 상대로 한 파운드리 제품의 제값 받기도 쉽지 않았을 터라 파운드리 사업에 쏟아진 우려를 벗어던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반도체의 ‘초격차’도 도전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전하더라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어 부담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 마이크론의 도전이 거세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항상 앞선 공정 기술을 발표하고 시장을 선도했는데 16㎚와 14㎚ 공정 D램은 마이크론이 먼저 발표했다”며 “13㎚ D램은 삼성이 먼저 개발하겠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만으로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이 자랑하던 초격차가 좁혀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가 공격적으로 생산 설비 투자를 집행하지 않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평가도 나온다. 지금 생산설비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가 충분한 고객을 끌어 모으지 못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품질 논란이 잦아들면 핵심 고객사들도 자연스럽게 삼성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금은 핵심 고객들이 TSMC를 찾고 있지만 한 곳에만 의존해선 부담이 클 것”이라며 “품질을 끌어올리면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수요가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 8만원대로 목표주가 낮춰, 성장 모멘텀 회복이 관건

삼성전자가 4월 한 달간 ‘6만전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국내 증권사들도 목표주가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메리츠 증권은 29일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12.5% 낮춰 8만4000원으로 새로 제시했다. 28일엔 NH투자증권(17.1%)과 KB증권(5.6%), 다올투자증권(16.2%), 신한금융투자(10.3%), 하이투자증권(7.9%)이 일제히 목표주가를 8만원대로 낮췄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기대감이 둔화되면서 주가가 8만원대 중반을 넘어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목표주가를 낮췄다고 이들 증권사들이 삼성전자의 주가 반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다, 주가가 워낙 낮아진 터라 평가가치(밸류에이션)에 메리트가 있는 상황이란 판단이다.

그러나 일시적 반등이 아닌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려면 성장 모멘텀 회복이 필요하단 분석이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에선 압도적 기술 경쟁력이 약화되는 모습이고 스마트폰과 가전에선 전방 수요가 정체됐다”며 “사업 부문별 성장 모멘텀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성장 모멘텀 회복 신호의 중심은 결국 반도체 사업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구조적 반등은 저점 논리보단 영업가치의 회복에서 발생할 것”이라며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과 메모리 경쟁사와의 공정격차 확대 등을 회복 신호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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