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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지원, 4달러 수익"…코로나 줄어도 백신 파고드는 호주

중앙일보

입력

7일 기자가 찾은 호주 멜버른의 모나시(Monash) 약학 대학은 들뜬 분위기였다. 이날 모나시 대학은 QS 세계 대학 순위 약학 부문에서 영국 옥스퍼드와 미국 하버드 대학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약대 내에 있는 mRNA 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코로나19 백신 후보 생산에 성공했다. 호주에서 개발한 첫 코로나 mRNA 백신이다.

세포 단백질 전체를 타깃(target)으로 하는 화이자·모더나 백신과 달리 단백질의 끝부분을 겨냥해 개발했다. 현지에서 만난 연구팀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집중했기 때문에 용량을 조금만 맞아도 되고, 백신 이상 반응도 점점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백신은 멜버른대 도허티 연구소에서 임상 시험 절차를 시작했다.

지난 7일 호주 모나시 약학대학에서 mRNA 연구소 해리 알-와씨티 박사가 호주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7일 호주 모나시 약학대학에서 mRNA 연구소 해리 알-와씨티 박사가 호주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 유행이 잦아드는 상황에서 이들이 코로나 백신 개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연구팀 소속 해리 알-와시티 박사는 “코로나바이러스 변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백신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우리 손으로 mRNA 백신을 만들고 분석하는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코로나뿐 아니라 미래에 나올 다른 신종 감염병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여성기자협회가 마련한 기획 취재 차 들른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코로나 이후 언제가 올지 모르는 '또다른 신종 감염병(Disease-X)'에 대비하기 위한 호주 보건·의료계의 움직임을 알아봤다.

미래 전염병 대비 위한 산학 협력…탄탄한 정부 지원 바탕

코로나를 겪으면서 호주에서는 ‘백신 주권’을 길러야 한다는 경각심이 커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6일 빅토리아 주 정부 건물에서 만난 린다 크리스틴 의료연구 디렉터는 “메디컬 산업에 주 정부 차원에서 1달러를 지원하면 4.54달러의 추가적인 수익이 생긴다”면서 “코로나를 겪으면서 의료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 정부는 지난해 6월 호주의 첫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5백만 호주 달러(한화 약 45억 4000만원)를 지원했다. 해리 박사는 해당 백신 개발과 관련해 “주 정부의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모나시대학·mRNA 빅토리아(연구기관)·IDT오스트레일리아(제약회사) 등 산학협력으로 이뤄낸 쾌거”라고 설명했다.

호주 멜버른대 도허티 연구소에서 아잔타 로즈 연구소장(전염병 전문)이 코로나, HIV 등 연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 도허티 연구소에서 아잔타 로즈 연구소장(전염병 전문)이 코로나, HIV 등 연구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요 연구소, 제약 업체, 대학 등 일선에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호주의 면역학자 피터 도허티의 이름을 따서 2014년 세워진 도허티 연구소는 지난해 1월 전염병 부문(Department of Infectious Diseases)을 새로 만들었다. 전염병 전문가 샤론 르윈 박사가 주축이 됐다. 샤론 박사의 실험실에서 연구소장을 맡은 아잔타 로즈는 "그동안 HIV 연구를 주력으로 삼았는데, 지난 2년간 코로나를 겪으면서 민첩하게 전환해야만 했다"면서 "기본 재료는 병원균이지만, 모든 연구진은 처음부터 코로나 관련 문헌을 배워 나가야 하는 등 많은 변화를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도허티 연구소는 멜버른 대학교, 버넷 연구소 등 호주 내 다른 기관들과 협업을 맺어 전염병 연구소(AIID, Australian Institute for Infectious Disease)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27년 개장을 앞둔 AIID는 미래에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하면, 호주인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연구원, 의료 전문가, 업계 지도자들의 네트워크를 주도하게 된다. 보다 장기적인 대비다. 빅토리아 주 정부는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AIID 건립을 공표했고, 설치 및 운영에 4억 호주 달러(한화 약 3632억 원)를 투자했다. 다니엘 파실 전염병학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 발견 당시, 호주는 mRNA 백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구 기반은 있었지만, 실제 활용할 기술과 능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현실이 간과했던 부분(missing piece)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AIID를 만들게 된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달 11일 호주 빅토리아 주 정부와 RNA(리보핵산) 백신·치료제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달 11일 호주 빅토리아 주 정부와 RNA(리보핵산) 백신·치료제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정부와 일선 기관들의 움직임은 일부 성과로도 이어졌다. 호주 의료연구 예산의 절반 가까이 사용하는 빅토리아 주 정부에서는 지난해 미국 모더나의 mRNA 백신 제조 공장 설립을 유치했다. mRNA 등 기술의 글로벌 개발 협력도 활발해졌다. 지난 3월 11일에는 주 정부 산하 기관인 ‘mRNA 빅토리아’가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mRNA 백신을 포함해 RNA 전반을 아우르는 기술 협력을 하자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마이클 카펠 mRNA 빅토리아 CEO는 “코로나 초기 미국에서 주도한 코로나 백신 개발 기술 협력이 계기가 돼 한국과 협력하게 됐다”며 “이제는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mRNA 기술로 코로나뿐 아니라 어떻게 다양한 질병을 퇴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됐다”고 말했다. 업무 체결 협약 이후 “한국 업체 6곳, 호주 업체 6곳이 연구 호환을 할 수 있도록 기술 협력 파트너십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속성’·‘저비용’ 등 내세워…임상 강국 준비 중인 호주

새로운 감염병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백신·치료제 개발 수요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호주는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글로벌 거점국이 되기 위한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임상 시험이다. 수잔 펴서 뉴사우스웨일스(NSW) 보건부 장관은 "임상 시험은 모든 연구 파이프라인의 핵심 부분"이라며 "호주는 다양한 인구, 세제 혜택, 신속한 시스템 덕에 저비용 고효율 임상 시험을 수행하고자 하는 업체들에 최고의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최근 셀트리온과 아이진 등은 임상 시험을 진행하기 위해 호주를 선택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임상 전문 기업 사이언티아(Scientia)에서 연구자가 원심분리기 내 샘플을 살피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임상 전문 기업 사이언티아(Scientia)에서 연구자가 원심분리기 내 샘플을 살피고 있다.

임상 시험 중에서도 호주가 주력하는 단계는 초기 1~2상이다. 3단계로 이뤄지는 임상에서 초기 1~2상은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패율이 높다. 1상이 부작용이 없는지 안전성을 시험하는 단계라면, 2상은 신약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단계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3상이 79% 성공률을 보이지만 1상과 2상은 각각 56%, 44%의 성공률을 보였다. 시드니 임상 전문 기업 사이언티아(Scientia)의 샬롯 레메흐 책임자는 "초기 임상에서 정확한 약용량과 안전성을 확실하게 찾아내야 다음 단계가 가능하다"면서 "안전성을 검증하는 1상에선 20~50명의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해서 굉장히 세부적(detail)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호주 임상 전문 기업들은 다민족·다인종 국가인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멜버른 임상 전문 기업 뉴클리어스 네트워크(Nucleus Network)의 제프리 웡 사업개발 디렉터는 "인구학적 다양성 덕분에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에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돈인 신약 개발에서 승인 절차를 간소화시켜 속도감 있게 임상 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상 분야에서 경쟁 관계인 미국과 비교했을 때, 세금 혜택 등으로 저렴한 비용이라는 점 역시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호주 정부는 연구·개발 세금 제도를 통해 최대 43.5%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애덤 커닌 빅토리아주 동북아시아 담당 참사관은 "임상 시험 하기 좋은 호주에서 한국 업체들과의 협력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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