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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다산·모네 한자리…“이건희가 쓴 국민 미술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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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20).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20).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겸재 정선(1676~1759)의 수묵화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1751)와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20)을 한 전시에서 만난다. 고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이 소장하고 아꼈던 작품들이다. 지난해 4월 고 이 회장 유족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7개 기관에 기증한 문화유산과 미술품의 놀라운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 이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고 공립미술관 5곳 등 총 7개 기관이 협력한 전시다. 2만3000여 점의 기증품 중 295건 355점을 소개한다.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의 금속, 토기, 도자기, 전적, 목가구, 조각, 서화, 유화 등 시기와 분야가 다양한 작품이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각각 기증품 전시를 열었다. 하지만 고미술품과 근현대 작품을 망라한 이번 전시야말로 ‘컬렉션 자체가 명품’이라는 이건희 기증품의 실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시 자체가 박물관’이고, 수집가 이건희가 쓴 ‘국민 미술 교과서’라 할 만하다.

조선시대 책가도(冊架圖) 방식으로 전시된 작품들. 꽃 모양 소반 등 목기들과 개구리·복숭아 모양의 백자 연적, 벼루와 나전 칠 상자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책가도(冊架圖) 방식으로 전시된 작품들. 꽃 모양 소반 등 목기들과 개구리·복숭아 모양의 백자 연적, 벼루와 나전 칠 상자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308점, 국립현대미술관이 35점을 출품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김환기의 ‘작품’, 대구미술관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한일(閑日)’, 이중섭미술관은 이중섭의 ‘현해탄’, 전남도립미술관은 천경자의 ‘만선(滿船)’ 등 12점을 출품했다. 전시품 중 국가지정문화재는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 등 국보가 13점, ‘삼현수간첩(三賢手簡帖)’ 등 보물이 20점이다.

고 이 회장 유족은 지난해 문화유산 2만1693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현대 미술품 1488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또 근현대 미술품 102점을 지역 미술관 5곳에 나눠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 30점, 대구미술관 21점, 박수근미술관(강원도 양구군) 18점, 이중섭미술관(제주도) 12점, 전남도립미술관 21점 등이다.

삼국시대 말~통일신라 초 7세기 후반에 제작된 보살상(왼쪽)과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부처상.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삼국시대 말~통일신라 초 7세기 후반에 제작된 보살상(왼쪽)과 통일신라 8세기에 제작된 부처상. [사진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증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며 “문화유산과 근현대 미술의 대표작을 선별하고, 서로 연결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제1부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 제2부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로 구성해 수집가의 집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고 이 회장의 안목과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 중 하나인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지난해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이 그림과 크기와 구도가 같고 제작 시기가 유사한 작품이 약 800억원에 낙찰됐다. 전문가들은 이 작품도 600억~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정약용(1762~1836)의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도 처음 공개된다.

불교 미술품과 옛 책자를 전시한 공간도 경탄을 자아낸다. 6세기에 제작된 ‘일광삼존상’이 나왔고, 고려 14세기 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는 각각 2개월씩 전시된다. 미술사학자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기증품 목록을 보고는 “국립박물관이 비로소 부끄러움을 면하게 됐다”며 ‘천수관음보살도’를 가장 반겼다.

정약용이 1814년에 쓴 ‘정효자전’과 ‘정부인전’. 정약용 필체의 특징인 균제미가 잘 드러나 있다. 두 점 모두 최초로 실물이 공개됐다. [뉴시스]

정약용이 1814년에 쓴 ‘정효자전’과 ‘정부인전’. 정약용 필체의 특징인 균제미가 잘 드러나 있다. 두 점 모두 최초로 실물이 공개됐다. [뉴시스]

『초조본 현양성교론(初雕本顯揚聖敎論)』(11세기, 국보), 금속활자로 인쇄한 초간본 『석보상절(釋譜詳節) 권20』(1447~1449) 등은 기록문화에 대한 고 이 회장의 남다른 애착을 보여준다. 유학자 송익필, 성혼, 이이가 30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첩 『삼현수간첩』(1560~1593, 1599년 편집)도 눈길을 끈다.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도 나란히 나왔다. 김환기의 추상회화가 전통문화와 자연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했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구성이다.

안 명예교수는 “간송 컬렉션처럼 고 이건희 회장은 명품 컬렉션의 네 가지 요건(문화재와 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 안목, 결단력, 재정)을 모두 갖추고 수집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것을 넘어 문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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