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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의협 입장 변했다...코로나 뒤에도 가능한 병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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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코로나19가 물꼬를 터 2년 여간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를 상시화하기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채비가 시작되면서 비대면 진료는 자동 종료될 처지에 놓였었는데 새 정부가 제도화에 의지를 드러내면서다. 그간 원격 의료에 ‘무조건 반대’ 입장이었던 대한의사협회에서도 기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실질적인 논의를 위해 의료계와 협의체를 꾸려 내달 초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을 토대로 비대면 진료를 상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며 “6개 의약단체로 구성된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관련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이르면 내주에 열린다. 지난해 10월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인 최혜영 의원 안은 동네 의원에 한해 고혈압·당뇨병 등 일부 재진(두번째 이상 진료) 만성질환자와 섬·벽지 거주자 등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17일 서울 중구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재택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7일 서울 중구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재택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행법상 원격 의료는 의사 간 협진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지금처럼 의사가 전화와 화상으로 환자를 ‘랜선’ 진료하는 것은 불법이다. 2000년 강원도 16개 시군 보건소를 대상으로 원격 의료 시범사업을 했는데 이후 의료계 반발에 법 개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22년째 본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 2월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고, 그해 12월 국회에서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해 심각 단계 이상의 감염병 위기 경보가 발령됐을 때 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범위에서 비대면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비대면 진료의 빗장이 풀리면서 이용자는 크게 늘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 2년 여간 비대면 진료 건수는 누적 440만건가량 된다. 코로나19 재택치료자의 이용 건수를 제외한 수치로 코로나19가 아닌 일반 질환의 비대면 진료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이다. 관련한 앱(애플리케이션)만 수십 개에 달한다.

당초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진료와 처방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런 앱들에서는 현재 비만치료제(삭센다)부터 탈모 약, 사후피임약, 다이어트 약 등 자칫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전문의약품까지 처방되고 있다. 한 남성은 인터넷에 “코로나에 걸리고 비대면 진료에 눈을 뜨게 됐다”며 탈모 약을 6개월 치 배달받은 후기를 올렸다. 그는 “진료비, 처방전은 1만원, 약 6개월분에 8만8200원 도합 9만8200원 나왔다”며 “2개월당 8만원 가까이 나오던 피부과 생각하면 정말 저렴하다”고 썼다. 직장인 정모(41)씨는 "다이어트를 하려고 동네의원에서 삭센다 처방을 받으려했더니 체질량 지수가 낮다며 말렸는데 비대면 진료앱에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방해주더라"며 "편하긴 한데 부작용 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해 불안하기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블로그에는 사후피임약 광고성 게시물들도 여럿 올라와 있다.

다만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더라도 산업적 측면보다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맞춰 추진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규정해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초진(첫 진료)이 아닌, 반복 진료가 필요한 일부 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걸 검토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와 어떤 방식으로 할지 협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을 개정할 것”이라면서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환자에게 확인할 게 많으니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재진 환자 대상으로 제도를 설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26일 낸 입장문에서 취약지·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동네 병·의원의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대면 진료에 참여 중인 한 의원이 관련 플랫폼에서 진료 과목 등을 안내하고 있는 화면.

비대면 진료에 참여 중인 한 의원이 관련 플랫폼에서 진료 과목 등을 안내하고 있는 화면.

대형병원 쏠림, 약 오남용, 오진 등을 이유로 줄곧 반대했던 의협도 최근 플랫폼(앱이나 포털)을 배제한다는 전제로 대안을 찾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의협 측은 최근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원격의료 시행을 대비해 주도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자는 안건을 의결하고 동네 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이 주체가 되고 대면 진료보다 1.5배 수가를 올려받는 안 등을 논의했다.

의협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플랫폼 진료 방식은 건보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오남용 문제도 있다”며 “여전히 대면 진료가 원칙이 돼야 한단 게 우리 입장이지만 국민 수요가 높아지고 있으니 지극히 한정적인 선에서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산하단체와 구체적인 모델을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협의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초진 환자에도 허용하고, 대상 질환도 넓혀야 한다는 입장인데다 약사단체는 불법 복제약 판매, 약 오배송 등을 이유로 여전히 반발하고 있어 도입 과정에서의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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