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3·7 완전작전 때 북GP 박살…그 포병대대 이름 없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70년대 북한군의 불법 총격 도발에 포격으로 응징한 ‘3ㆍ7 완전작전’의 주역인 부대가 군 편제에서 사라진 사실이 확인됐다.

 2017년 3월 7일 열린 3ㆍ7완전작전 재현 행사. 당시 작전의 주역인 A 포병대대가 포를 발사하고 있다. 육군 제3 보병사단

2017년 3월 7일 열린 3ㆍ7완전작전 재현 행사. 당시 작전의 주역인 A 포병대대가 포를 발사하고 있다. 육군 제3 보병사단

국방부와 육군에 따르면 육군 제3 보병사단 예하 A 포병대대가 최근 B 포병대대로 이름을 바꿨다. A 포병대대와 B 포병대대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B 포병대대는 3사단이 속한 제5 군단 직할 포병여단의 부대 중 하나다.  A 포병대대는 주둔지와 생활관을, B 포병대대는 장비와 인원을 남겼다.

A 포병대대는 6·25 전쟁 중이던 1952년에, B 포병대대는 1978년 각각 창설됐다.

이 같은 조처는 국방개혁 2.0의 군구조 개편 작업에 따라 이뤄졌다.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이 줄어들면서 육군을 중심으로 부대의 통폐합이 대대적으로 따랐다.

그런데 육군 내부에선 통합 부대명을 A 포병대대가 아닌 B 포병대대로 삼은 데 대해 말들이 많다. A 포병대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3ㆍ7 완전작전에서 북한군 감시초소(GP)를 박살 낸 부대로 유명하다.

3ㆍ7 완전작전은 1973년 3월 7일 당시 3사단장인 고 박정인 장군(1928~2016)이 짠 작전이다. 당일 3사단 소속 장병이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뽑아간 표지판을 다시 세우는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근 북한군 GP에서 총탄이 날아와 아군 2명이 총상으로 쓰러졌다.

1973년 3월 7일 비무장지대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총격 도발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

1973년 3월 7일 비무장지대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총격 도발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

박정인 장군은 방송으로 사격중지를 요구했지만, 북한군이 이를 듣지 않고 총격을 계속했다. 이에 박정인 장군은 아군을 구출하기 위해 3ㆍ7 완전작전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A 포병대대 등 3사단 포병이 155㎜와 105㎜ 곡사포 포격으로 북한군 GP를 완전히 부쉈다. 작전은 아군을 데리고 나오면서 끝났다.

박정인 장군은 더 나가 그날 밤 사단 내 모든 트럭에 부대원을 태운 뒤 DMZ 남방한계선까지 보내는 무력시위까지 벌였다. 그는 회고록인 『풍운의 별』에서 “김일성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썼다.

박정인 장군은 사단장직에서 해임되고, 곧 전역했다. 독단적인 군사작전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다.

후에 귀순한 북한군은 “북한군 GP에 포탄이 정확히 떨어져 29명 전원이 사망했다”며 “북한군에서는 백골사단을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로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백골은 3사단의 상징이다.

이런 배경에 따라 군 안팎에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방침에 따라 북한이 꺼리는 부대명을 없앤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실제로 3사단 측에서 육군본부에 부대명을 A 포병대대로 하자고 여러 차례 건의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육군은 “A 포병대대는 견인포 부대며, B 포병대대는 자주포 부대”라며 “해당 부대의 개편은 견인포에서 자주포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작전효율성, 부대명칭 제개정 관련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고 박정인 장군(1928~2016)

고 박정인 장군(1928~2016)

그러나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군에서 사기를 무형의 전력 요소라 부르며, 사기는 소속 부대를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이 바탕”이라며 “혁혁한 전과를 거둔 부대명을 이어받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