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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매일 영상통화, 열 달째 소식 깜깜…30대 카자흐 딸, 증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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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너무 너무 너무 사랑해. 엄마도 나를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말아 줘.”
오늘도 엄마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2019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간 엄마는 10개월 전까지만 해도 매일 연락을 했었다. 12살 자넬은 외할머니와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엄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실종된 알비나 캅둘디나(35). 지난 2019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과 김해, 진주 등 경남권에서 지냈다.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지난해 6월 실종된 알비나 캅둘디나(35). 지난 2019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과 김해, 진주 등 경남권에서 지냈다.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캅둘디나의 딸 자넬은 답이 오지 않는 엄마와의 채팅방에 매일 메시지를 보낸다. 러시아어 문자를 한글로 번역해 덧씌웠다. 시간 옆의 체크 표시는 메시지를 읽지 못했다는 의미다. [사진 왓츠앱 캡처]

캅둘디나의 딸 자넬은 답이 오지 않는 엄마와의 채팅방에 매일 메시지를 보낸다. 러시아어 문자를 한글로 번역해 덧씌웠다. 시간 옆의 체크 표시는 메시지를 읽지 못했다는 의미다. [사진 왓츠앱 캡처]

자넬의 엄마 알비나 캅둘디나(35)는 한국에서 10개월째 실종 상태다. 그녀의 소식을 눈물로 기다리던 모국의 가족과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측은 중앙일보에 “알비나를 찾을 수 있겠느냐”며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21일 알비나의 어머니 아이굴 볼사예바(60)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이굴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10개월간 단 하루도 딸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매일 영상통화 하던 딸, 10개월째 연락 두절

지난해 6월 실종된 캅둘디나 알비나(35). 지난 2019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과 김해, 진주 등 경남권에서 지냈다.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지난해 6월 실종된 캅둘디나 알비나(35). 지난 2019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과 김해, 진주 등 경남권에서 지냈다.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엄마, 여긴 나무가 많아. 초록색이 예쁘지?” 알비나는 모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연락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부산, 김해 등지에서 일하면서 2020년 8월엔 난민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었지만, 가족은 꼭 챙겼다.

아이굴은 “딸은 매일같이 영상통화로 한국의 아파트, 거리의 고양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어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며 ‘조만간 한국어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울먹였다. 이어 “딸이 지내는 곳 주변에는 작은 강이 있었다. 딸이 보여준 한국 양배추는 카자흐스탄 것과 달랐다”고도 했다. 모녀는 매일 통화하며 한국을 공유하고 있었다.

 캅둘디나 알비나와 딸 자넬이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캅둘디나 알비나와 딸 자넬이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오자 가족들은 알비나에게 “집으로 돌아오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비나는 “더 큰 아파트로 이사하자. 돈을 더 모아서 돌아가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부모님, 언니와 조카딸, 자신의 딸 등 6명이 방 2개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이굴은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흐느꼈다.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돌아오라고 더 강하게 말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지난 21일 오후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알비나 캅둘디나(35)의 어머니 아이굴 볼사예바(60)와 인터뷰하는 모습. 대사관의 바우르잔 다우토브 주재관의 통역으로 인터뷰가 이뤄졌다.

지난 21일 오후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알비나 캅둘디나(35)의 어머니 아이굴 볼사예바(60)와 인터뷰하는 모습. 대사관의 바우르잔 다우토브 주재관의 통역으로 인터뷰가 이뤄졌다.

늘 한국에 대해 ‘좋다’, ‘예쁘다’라고만 했던 딸과의 마지막 통화(2021년 6월 13일)도 한국 얘기였다고 한다. “엄마, 6월인데 올여름엔 뭐할 거야? 엄마랑 엄마 손녀들이랑 한국 여행 한 번은 올 수 있게 내가 노력할게.” 10개월 전의 그 통화 이후 딸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딸 찾아주겠다”며 2000만원 챙긴 사람도

딸과의 연락이 끊긴 지 13일이 지난 지난해 6월 26일, 아이굴은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에 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신고했다. 같은 날 대사관이 서울 용산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지난해 7월엔 알비나의 언니가 SNS에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한 카자흐스탄 여성이 “동생을 찾아주겠다. 한국에 오래 살아서 한국어도 잘하고 아는 변호사들도 있다”며 접근해 왔다. ‘서류를 만들어야 한다’, ‘항공비가 필요하다’며 총 700만 텡게(한화 약 1960만원)를 요구했다. 이사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그에게 내줬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내일 해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다 연락이 끊겼다.

“기다리고 있어. 제발 빨리 돌아와.”

알비나 캅둘디나(35)의 어릴 적 사진 [사진 캅둘디나 씨 가족 제공]

알비나 캅둘디나(35)의 어릴 적 사진 [사진 캅둘디나 씨 가족 제공]

알비나의 엄마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알비나는 차분한 성격이었고 남의 말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해코지라도 당했을까 너무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무슬림인 엄마는 하루 5번 기도(살라트) 때마다 딸의 목소리라도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대사관에서 실종신고를 접수한 지난해 6월, 용산경찰서는 마지막 주소지가 있던 경남의 진주경찰서와 공조 수사를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행방은 묘연하다. 용산서 관계자는 “생활 반응을 탐지했으나 반응이 나오지 않아 계속 수사 진행 중이다. 출국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알비나를 봤거나 아는 분은 아래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관계자의 휴대전화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관 관계자 휴대전화 010-7185-8946 (한국어), 010-6682-2992 (영어,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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