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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은 느림의 미학, 명상의 시간 즐기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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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18면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관 5층에는 바다·시간·움직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얄 게버의 ‘바다의 조각2’.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관 5층에는 바다·시간·움직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얄 게버의 ‘바다의 조각2’.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고성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통영은 바다 위 보석처럼 흩뿌려진 570여 개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시의 슬로건을 ‘바다의 땅 통영’이라 지을 만하다. 그런데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서 한려수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섬의 숫자는 무의미해진다. 무수히 많은 점들이 연결되어 선을 이루듯, 바다 저 멀리 한 폭의 수묵화가 이어지고, 그걸 보는 내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만 명징해진다.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 덕분에 어쩐지 시간마저 느리게 흐를 것 같은 이곳 통영에서 요즘 작지만 알찬 예술 행사가 열리고 있다. 5월 8일까지 이어지는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다. 한산도·사량도·연화도 등 섬과 연계된 행사들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지만 핵심은 주제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전시다.

조선소 연구동, 7개 층 전시장 변신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관 5층에는 바다·시간·움직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지송 감독의 ‘멈춘 바다’.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관 5층에는 바다·시간·움직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지송 감독의 ‘멈춘 바다’.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과거 신아SB조선소의 연구동으로 쓰였던 건물의 총 7개 층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주제관의 올해 주제는 ‘테이크 유어 타임(TAKE YOUR TIME·여유를 가지세요)’이다. 기획자 다니엘 카펠리앙은 “이 전시 공간에서만큼은 외부의 것을 놓아두고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제안했다. 총 13개국 38명의 작가가 참여한 주제관 전시에는 19세기 작품부터 수공예, 뉴로 디자인, 인공지능, 가상현실, 몰입형 설치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이 많은 작품들을 단어로 꿴다면 ‘바다·시간·명상’이 아닐까.

특히 1층부터 7층까지 연결되는 층계 풍경이 그렇다. 층계를 오를 때 시선이 닿는 긴 벽을 미디어 작품 ‘반향(Elevation)’이 비추고 있는데, 흰 물결을 일으키며 힘차게 움직이는 바다는 위를 향해 움직이며 전 층을 아우른다. 미디어 아티스트이기도 한 기획자 카펠리앙이 현각 스님의 만트라 영송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다. 만트라는 명상이나 기도 중에 읊는 소리로 영적인 힘을 갖는다고 믿어진다. 그래서일까, 한 층 한 층 오를 때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발을 딛는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관 5층에는 바다·시간·움직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토드 홀루벡의 ‘느린선’.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주제관 5층에는 바다·시간·움직임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토드 홀루벡의 ‘느린선’.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작품에 몰입해 낯선 시간을 경험하기에는 네덜란드 작가 마르텐 바스의 작품 ‘콘페티 클락’ 또한 매력적이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로 꼽히는 작가가 빗자루 같은 막대로 색종이 조각(콘페티)을 반복적으로 쓸어 모으며 시침·분침을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색종이 조각들의 아름다운 찰나를 보고 있자니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닿는다. 실비아 인셀비니의 ‘녹턴시리즈’는 푸른빛의 얇은 금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가가 강박처럼 종이 위에 무수한 볼펜 자국을 남겨서 얻은 결과다. 기계적 반복이라는 개인적이면서도 단순한 작업이 시간의 축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측정과 명상 방법을 알려주는 같아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실비아 인셀비니의 ‘녹턴 시리즈’. 종이에 볼펜으로 수없이 선을 그어 금속같은 질감과 푸른 빛의 색감을 만들었다.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실비아 인셀비니의 ‘녹턴 시리즈’. 종이에 볼펜으로 수없이 선을 그어 금속같은 질감과 푸른 빛의 색감을 만들었다.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바다의 땅’ 통영을 잘 표현한 5층도 관람객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한 층을 넓게 터서 커다란 스크린과 사진들을 전시했는데, 공통된 이야기는 ‘바다’와 ‘움직임’이다. 이스라엘 작가 이얄 게버의 ‘바다의 조각’은 요동치는 파도의 모습을 3D로 제작한 것으로, 굴곡진 단면들이 여러 방향으로 증폭되는 모습이 실제 눈앞에서 파도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광고계에서 유명한 이지송 감독이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멈춘 바다’와 ‘色다른 바다’는 해상도는 거칠지만 무심한 바다 풍경을 펼쳐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로 옆에 걸린 호주 바이오퀘스트 스튜디오의 다큐멘터리 작품 ‘산호, 고대의 생존자’의 고화질 영상과 나란히 있으니, 너무 다른 두 작품의 색깔 때문에라도 절로 관람객의 발길이 멈춘다. 천천히 화면 위를 움직이는 선이 거대한 출렁임을 만드는 미국 작가 토드 홀루벡의 ‘느린 선’ 또한 바다 위로 흐르는 시간의 여정을 느끼게 한다. 스크린마다 나무액자 프레임을 둘러서 미디어 아트·사진·그림의 경계를 없애고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공간을 연출한 건 주제관 기술감독 곽동엽씨의 아이디어다. 층고가 낮은 데도 방마다 서로 다른 조명과 사운드 역시 세심하게 설계됐다.

1층부터 7층까지 연결되는 층계 벽에서 상영되고 있는 미디어 작품 ‘반향(Elevation)’.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1층부터 7층까지 연결되는 층계 벽에서 상영되고 있는 미디어 작품 ‘반향(Elevation)’.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2층에 마련된 이탈리아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의 작품 ‘쾌적한 공간’은 모든 층의 전시를 감상한 후 맨 마지막에 들를 것을 추천한다. 나무가 있는 풍경을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유화처럼 클래식한 감성으로 표현한 미디어 아트 작품인데, 색이 흩어졌다 뭉치는 반복적인 과정이 묘하게 편안함을 부른다. 가로로 긴 모니터 앞에는 눕거나 기대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빈백도 여러 개 준비돼 있다. 주제전 큐레이터 조혜영씨는 “작가가 의도한 풍경과 통영의 도시 풍경은 시공간은 다르지만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고, 잠시 멈춰서 명상의 시간을 즐기라고 얘기한다는 점에선 같다”고 설명했다.

장인과 현대작가 협업 잘 어우러져

공예 특별전 ‘수작수작(手作秀作)’ 전시 연출.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공예 특별전 ‘수작수작(手作秀作)’ 전시 연출. [사진 통영국제트리엔날레]

한편 통영시립박물관에서는 공예 특별전 ‘수작수작(手作秀作)’이 열리고 있다. 300여 년 간 통영 공예의 명맥을 이어온 장인들의 도구와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통영은 예부터 ‘12공방’이 유명했다. 1593년(선조 16) 삼도수군통제사(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조선시대 관직)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임명되고, 통영에 통제영이 설치되면서 전국의 기술자들을 모아 조직한 게 바로 12공방이다. 처음에는 군수용품을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전후에 부채·나전·가죽·철물·목가구·갓·자개 등 공예문화가 꽃피면서 한국 전통공예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통영을 상징하는 나전칠기, 통영소반, 통영발, 통영부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번 ‘수작수작(手作秀作)’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12공방 전통 공예의 재료, 도구,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통영발 뒤에 문화를 사랑하는 양반가의 누군가 앉아 있고(갓·정자관 등 다양한 형태의 조선시대 남성용 모자가 사람을 대신해 전시돼 있다), 그 앞으로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대가 펼쳐지면서 소반·도자기 등의 공예품이 전시된 공간연출은 작은 연극무대를 보는 듯하다. 전시기획과 연출을 맡은 솔루나아트그룹의 노일환 대표는 “오래된 유물과 현대 공예품, 장인과 현대작가의 협업이 어우러지도록 준비했다”며 “현대인의 일상에서 전통 공예품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라이프 스타일적인 면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사항은 통영국제트리엔날레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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