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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국회는 리콜이 안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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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간단한 퀴즈로 시작해보자.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 가운데 면직(탄핵)으로 내몰렸던 사례는? 6명 중 2명(33%). 같은 기간 연인원 2000여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의원직 제명으로 물러난 사례는? 0. (의원을 탄핵할 헌법적 근거는 없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 국회의원은? 한 번에 4년씩이며 연임 제한이 없다. 현재 5선 이상 국회의원만도 10여 명이다.

이 간단한 숫자들에 따르면, 대통령직은 극한 직업이고 국회의원은 한국정치 최고의 직업이다. 제명의 위험도, 실패의 책임도 없는 헌법기관이 국회의원이다. 견제를 받지 않으니, 폭주는 여의도의 다반사이다. 요즘 두 가지 엇갈린 폭주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절박하게, 또 한편으론 한가롭게.

견제 장치 없는 다수파의 독주
민생 외면한 채 정치이슈 올인
의원 국민소환제 다시 논의해야
소환제 전제는 의원평가 체계화

절박한 폭주는 검수완박이라는 이름하에 형사소송법, 검찰청법을 개정하려는 거대 야당의 폭주. 또 다른 하나는 얼마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국회연설 때 드러난 여야 합동의 무책임의 폭주. 두 사태에 대한 날선 비판은 차고 넘친다. 비판을 더 보태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폭주를 멈춰 세우고 의원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길을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대안들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필자는 ①국민소환제 논의 부활과 ②의정활동 평가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변화의 대안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연설 참사를 통해 드러난 의원들의 무책임과 직무 태만부터 돌아보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비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차가운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다.

첫째,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세계화, 경제통합이라는 근사한 말들은 짓밟히고 있다. 그럴싸한 말의 자리를 메꾸는 것은 강대국, 군사력, 동맹, 첨단무기로 상징되는 살벌함과 힘의 위력이다. 공동체의 생존 방식이 바뀌고 대결과 동맹의 단층선이 새로 그어지는 결정적 전환 앞에서 의원들은 한가하게 뒷짐을 지고 있다. 냉전의 구도를 뒤집어놓았던 미-중 데탕트(1972) 글로벌 금융위기(2008) 때에도 그랬듯이.

둘째, 동유럽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장 우리 시민들의 삶을 옥죄는 글로벌 애그플레이션의 뇌관이다. 이미 슬금슬금 오르는 조짐을 보여 왔던 세계 농산물 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지난 두어 달 사이 대략 40% 가량 올랐다. 마트나 재래시장에 한번만 나가보면 보통사람들의 쪼그라드는 장바구니를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 삶은 어둡건만 국회는 검수완박 법안을 둘러싼 대충돌에 몰두할 뿐이다.

의원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가장 일반적 대안은 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이다. 실제로 몇몇 의원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해 노력해왔다. 의원소환제와 관련한 현직 의원의 발언을 옮겨보자.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은 동의자 수가 벌써 20만 명을 넘겼고,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을 퇴출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이 77.5%에 달한다.”(2019년 6월 5일 박주민 의원) 실제 박주민 의원뿐 아니라 김병욱 의원도 국민소환법을 발의해왔다.

우리는 고전적인 딜레마와 다시 마주한 셈이다. 시민 여론은 국민소환제라는 개혁에 압도적으로 찬성하지만 정작 이를 입법화해야 하는 다수 세력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결국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첫째, 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둘째, 국민소환제를 포함해 국회개혁을 압박하는 시민들 요구의 조직화.

그간 의원 개개인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려는 시도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본회의, 상임위 출석률, 법안 발의 건수와 같은 기계적 잣대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무성의하게 시도된 의원평가는 결국 발의 건수 늘리기 위한 중복, 유사 법안들의 폭발(양적 기준으로만 보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과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 들여다보기로 귀결되어왔다.

단순한 양적 잣대보다는 헌법에 충실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민생을 돌본다면서 정작 시민들 부담만 늘리는 법을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규제만능 입법으로 개인, 기업, 단체의 자유를 옥죄면서 규제권력만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평가 잣대들이 검토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국민소환제의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둘째, 국민소환제를 포함하여 국회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일반 의지는 늘 조직화된 이익, 특수 이익에 패배해왔다. 이 딜레마를 넘어서려면 각별한 성공 방정식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조직화하는 시민사회의 힘, 개혁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핵심 주제어(국회의원도 리콜이 되나요?)의 부상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진영 대립을 넘어 책임 있게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보자는 바램은 그저 순진한 바램인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