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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군인끼리 성관계, 합의했다면 처벌 안돼” 대법원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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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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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군인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현직 군 간부 2명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군형법에 현직 남성 군인 간의 ‘항문성교’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더라도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진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독신자 숙소에서 성행위를 해 군형법상 추행 혐의를 받은 A중위와 B상사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지난 2016년경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 영외의 숙소에서 합의 하에 성행위를 했다. 군형법 92조 6항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문 그대로를 보면 남성 군인 간의 성관계는 합의 여부와상관없이 처벌받는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대법원은 ▶동성 군인 사이의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하지 않을 경우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군형법의 ‘항문성교’는 성교행위의 한 형태로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라며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해석이 도출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 조문에 나오는 ‘항문성교’는 원래 남성 간의 성행위를 뜻하는 ‘계간’이라는 단어를 2013년에 변경한 것이다. 즉, 대법원은 계간과 항문성교를 동일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대법원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와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처럼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두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추행)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2017년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은 군인 성 소수자에 대한 수사를 벌여 10여명의 군인을 기소했다. A중위와 B상사는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1심에서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3개월의 선고 유예를 받았다. 고등군사법원에서 진행된 2심도 같은 판단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배석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관계는 군형법 제92조의6에서 정한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남성군인 A씨와 B씨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 하에 성행위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배석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관계는 군형법 제92조의6에서 정한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남성군인 A씨와 B씨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 하에 성행위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뉴스1

“군인 간 성관계 처벌” 현행 군형법, 위헌 논란 지속…헌재 ‘합헌’ 결정에도 헌법소원 이어져

문제가 된 군형법 92조 6항은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개인이 낸 헌법소원이 이어져 헌재가 이 사건들을 심리 중이다.

국회에서도 수차례 육군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의 근거가 됐던 군형법 제92조의6을 삭제하는 내용의 군형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인사청문회 당시 이 조항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해당 조항 폐지 주장에 대해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윤 당선인은 당시 김도읍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후보자의 자녀가 동성애를 원한다면 이를 존중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질의한 것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조국 전 장관도 과거 ‘군형법 제92조의5 계간 그 밖의 추행죄 비판’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옛 군형법 제92조5 ‘계간죄’(현 제92조6)에 대해 “‘호모포비아’와 ‘이성애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 전 장관은 “동성애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부대관리훈령'이 의미를 가지려면 군형법 제92조의5 폐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인 간 동성애를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침해한다”며 “합의에 기초해 비공개적으로 이뤄지는 동성애가 군기나 전투력을 저하한다고 판단하긴 어렵다”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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