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블레임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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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린아이들이 크고 작은 사고를 친 뒤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거짓말이다. 혼나는 게 두려워 그럴듯한 다른 이유를 둘러댄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남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일으킨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기 어린이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으로 발달심리학에서는 어느 정도의 비난(blaming)은 언어와 인지 발달에 필수적인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도 남에 대한 불만과 불평.비난을 계속하는 사람은 의학적 진단과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정서적 불안, 충동적 행동에 대한 통제 불능, 애증이 수시로 교차하는 인간관계, 정체성 결여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심리장애를 심리학에선 경계선 성격장애(BPD.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심각한 것이 '분개형 경계선 성격장애'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정반대로 거부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고는 상대방이 거부감을 나타내면 갑자기 상대방을 격하하거나 비난하기 시작하고, 심하면 분노를 표출한다. 이런 행태가 계속되면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면서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비난이 성격적으로 고착된다.

경영 컨설턴트인 제럴드 와인버그는 조직에서 비난의 흐름을 건강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로 보았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탓하는 상향식 비난 흐름(blame flow)은 조직의 상층부가 책임을 지고 있기에 사소한 실패가 있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윗사람이 부하들만 탓하는 하향식 비난 흐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조직이 총체적으로 실패하는 징후라는 것이다.

요즘 청와대와 정치권에선 이른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이 한창이다. 자신은 책임을 안 지고 경쟁적으로 남을 탓하기 바쁘다. 청와대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건설업체.금융회사.중개업자.언론 등 부동산 세력의 탓으로 돌렸다. 사실 이 정부는 무슨 일이 꼬일 때마다 시종일관 '남의 탓'만 해왔다. 경기 침체는 이전 정권 탓, 개혁 부진은 보수 언론 탓, 북핵 문제는 미국 탓이다.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끝없이 남의 탓만 해대니, 이쯤 되면 경계선 성격장애를 의심해 볼 만하지 않은가. 여기다 여당마저 청와대를 탓하고 나서니 상향식도 하향식도 아닌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비난 게임이다. 총체적 실패의 징후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