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안전이 생명이다②
지난달 30일 오후 부산시 서구에서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한 대가 버스 정류장을 덮쳤다. 옆에 있던 건물 벽을 추돌한 차량이 갑자기 정류장 쪽으로 방향을 틀어 후진했고, 버스를 기다리던 60대 A씨와 B씨를 들이받았다. 두 사람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A씨는 결국 사망했다. B씨도 다리를 다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는 80대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가해 비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통행량이 줄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감소했지만 고령 운전자 사고만은 예외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고령 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19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과실로 3만1072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전체 교통사고 20만9654건 가운데 14.8%를 차지했다. 2016년 11.1%에서 비율이 3.7%포인트 상승했다.
사망 사고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고령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2020년 720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3081명 가운데 23.4%에 이른다. 2016년 17.7%였던 비중이 불과 4년 만에 20% 중반으로 튀어 올랐다.
2020년 기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가운데 65세 이상은 11.1%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망 사고 유발 비율은 훨씬 높았다. 고령 운전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심각한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줄었는데 고령 비율 늘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교통안전공단이 2020년 9~10월 운전자 4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도 같았다. 60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시속 60㎞에서 도로 시설물 종류와 개수, 표지 내용 등 주변 사물을 43.3% 인지했다(인지능력). 50대 이하 50.1%보다 낮게 나왔다. 시속 30~50㎞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최새로나 교통안전공단 박사는 “고령 운전자는 운전 경력이 긴 만큼 스스로 운전이 능숙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며 “제한 속도 아래로 천천히 달리고 야간 운전을 할 때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박사는 “운전자ㆍ보행자 모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주민 보호구간(교통안전시설을 강화하고 제한 속도도 낮춘 국도ㆍ지방도 일정 구간)’을 확대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비상 제동 장치 부착, 최고 속도 제한, 야간ㆍ고속도로 주행 금지 등 일정 조건을 내걸고 고령자에게 제한적으로 운전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현재 경찰청 등 관계부처에서 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신체 장애인 위주로 시행 중인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고령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1시 10분쯤 80대 남성 A씨가 운전하던 그랜저 승용차가 부산 수영구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후 인근 야쿠르트 전동카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행인 2명이 사망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고령자 대상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이미 영국ㆍ일본ㆍ호주ㆍ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다. 고령자는 비상 차량 제동장치(AEBS)를 부착한 차량만 몰 수 있게 하거나(일본), 운전 적성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도록(독일) 하고 있다.
또 교통안전공단은 65세 이상 화물차ㆍ버스ㆍ택시기사를 대상으로 자격유지검사를 시행 중이다. 인지능력, 주의력, 공간 판단력 등 운전에 필요한 기능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제도다. 65세 이상 70세 미만은 3년, 70세 이상은 1년 주기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고령 운전자가 검사를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교통안전공단은 관련 장비를 갖춘 이동버스를 활용한 ‘찾아가는 자격유지검사 서비스’를 2020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중앙일보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