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왜 유독 더딜까, 영화계 코로나 회복률 10개국 중 9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진흥위원회가 15일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발생 3년차, 한국영화산업이 처한 위기와 현황을 점검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가 15일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발생 3년차, 한국영화산업이 처한 위기와 현황을 점검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계가 흥망의 갈림길에 서있다며 국고 지원을 호소했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게 됐지만 붕괴한 생태계 복구를 위한 심폐소생이 시급하다면서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주최 ‘한국영화산업 위기상황 극복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코로나19로 고사 상태에 처한 영화계 현황을 점검하고 제작·배급 지원과 세제 혜택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15일 영화진흥위윈회 개최, 영화계 호소 #'한국영화산업 위기상황 극복방안 토론회'

코로나 직전 한국영화계는 ‘기생충’(2019)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4관왕에 더해 천만 영화가 2019년 한해 동안 다섯 편 탄생하며 사상 최고 극장 매출을 기록한 터.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코로나가 3년째 접어들며 신규 투자가 안 될뿐더러 나와있던 개발비도 투자자들이 회수하기 시작해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신인 감독들은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 극장가, 코로나 회복 더딘 이유?

전세계 극장가가 코로나19 속 활로를 모색해온 가운데 한국은 시장 회복이 유독 더딘 상황이다. 이날 제작‧수입‧배급사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이화배 이사가 제시한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전후 주요 10개국 극장 매출 회복률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 매출규모가 2019년의 30.1%(회복률)에 불과했다. 미국(39.2%)에 이어 9위로, 꼴지를 겨우 면했다. 1위 중국(73.7%), 2위 일본(71.6%)이 비하면 극장 매출 회복률이 절반 이하였다. 여기엔 한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것도 한몫했다. 한국영화는 그간 제작비가 수십 배에 달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국내 시장을 이끌며 코로나19 이전까지 5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해왔다.

코로나19 전후 주요 10개국 극장 매출 규모 변화 및 매출 회복률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전후 주요 10개국 극장 매출 규모 변화 및 매출 회복률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그러나 성수기 시장을 견인해온 한국 대작들의 개봉이 코로나19로 급감하자 고스란히 매출 절벽이 닥쳐왔다. 영진위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총제작비 100억 이상 한국영화 실질 개봉 편수는 4편으로 2019년 17편보다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영화 점유율은 30.1%로 영진위 집계가 시작된 2004년 이후 최저 수치다. 시장이 침체하다 보니 큰 폭의 손실이 예상되는 대작일수록 개봉을 미뤄서다. 이런 ‘텐트폴 영화’가 줄면서 극장가 전체 관객 발길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OTT, 기존 영화산업과 분배 방식 달라

또 극장 매출이 한국 영화산업 총 매출의 8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것도 느린 회복률의 요인으로 꼽혔다. 홈비디오 산업이 급격히 침체기에 접어든 1990년대 말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영화와 극장산업은 20여년간 동반 성장해왔다.

코로나19 시기 급성장한 넷플릭스 등 온라인 스트리밍(OTT)은 시리즈물에 비해 영화 산업 구조와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존 영화산업은 창작‧제작‧투자‧배급‧마케팅‧극장의 순환 구조인데 반해 OTT는 플랫폼과 창작‧제작자 양자구도가 많다는 것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지구를 지켜라!’ 등을 만든 프로듀서 출신 김선아 영진위 부위원장은 “OTT에서 창작자와 제작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도 문제”라고 되짚었다.

'기생충' 제작자 "OTT 하면 되지 않냐지만…"

곽신애 대표는 한국 영화 시장이 확장되려는 시기 코로나19가 시작됐음을 강조했다. “한국영화가 20~30년간 고군분투해서 쌓은 실력이 꽃피어 드디어 제대로 세계로 나가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팬데믹이 시작됐다. 나비효과로 한우‧소주 같은 한국 식품, 뷰티‧방산무기까지도 경제유발효과가 생겼다는데 영화는 절호의 타이밍에 2년간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영화 못 하면 OTT 하면 되지 않냐’는 말도 듣는데 영화계는 생태계 어느 한 곳이 막히면 병드는 순환구조다. 특히 신규 재능의 진입로가 폐쇄된 느낌”이라고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15일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 1부는 이화배 이사(스튜디오디에이치엘)가 영화산업 수익성 악화와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발제한 후 코로나19로 발생한 영화산업 위기 해결방안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됐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의 15일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 1부는 이화배 이사(스튜디오디에이치엘)가 영화산업 수익성 악화와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발제한 후 코로나19로 발생한 영화산업 위기 해결방안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됐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그는 “10년간 배워 영화계에 진출한 인력이 또 10년간 숙련의 시기를 거치면서 20년 무렵에 꽃 피우는 흐름인데 지금껏 노력해온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다”면서 “세계적 화제가 된 ‘킹덤’ ‘승리호’ ‘오징어 게임’ ‘D.P.’ ‘지옥’도 한국 영화 재능이 투입된 작품이다. 흥망의 갈림길이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긴급히 동원해서 복구해야 한국영화의 내일이 있다”고 말했다. NEW 영화사업부 김재민 대표는 “2년 전 쓴 자금이 회수가 안 되고 있다”면서 “배우, 감독 말고도 많은 스태프, 종사자가 2년간 임금을 못 벌었다고 볼 수 있다”고 호소했다.

"영화 개봉해야, 신규 투자 회복" 

18일부터 영업시간과 거리 두기 규제가 완화되고 25일부턴 극장에서 팝콘 등 취식도 가능하게 됐지만, 개봉 상황은 쉽사리 낙관하기 어렵다. 멀티플렉스 계열사가 있는 CJ ENM 작품의 경우 다음달 칸영화제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만든 한국영화 ‘브로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오는 6월 잇따라 개봉을 잡았다. 반면 극장을 보유하지 않은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지난해까지 극장 개봉을 준비하던 순제작비 100억원대 액션대작 ‘야차’는 최근 결국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작품·영화사마다 셈법이 달라서다.

CJ ENM 영화콘텐츠사업국 조영용 국장은 “올여름이 영화 시장 회복을 위한 마지막이자 절호의 기회다. 여름 대작 (관객 동원을 위한) 캠페인도 필요하지만 이후 중소 영화들도 개봉을 지원해야 여름의 좋은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겨울 대작 개봉 분위기가 마련될 것”이라면서 “영화 개봉이 순차적으로 빨리 이뤄져야 신규 투자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5일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 1부에 이어 2부는 지속가능한 한국영화의 미래, 독립?예술영화의 현안을 점검한다는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가 15일 '한국영화산업 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 1부에 이어 2부는 지속가능한 한국영화의 미래, 독립?예술영화의 현안을 점검한다는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멀티플렉스 극장 CJ CGV 조성진 전략지원 담당은 “한국영화 생태계에 극장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극장을 계속 열면서 유지하려는 노력을 했고, 재작년 3900억, 지난해 2500억원 정도 적자가 났다”면서 “극장에서 임대료가 가장 큰데, 대기업이란 이유로 소상공인 임대료 지원 정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롯데컬처웍스 김무성 상무는 미국‧프랑스‧중국 등 해외의 극장 지원 사례를 들며 “인건비‧임차료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했다. 반면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는 “극장만 살면 한국영화가 사느냐, 그나마 푸는 영화도 스크린 독과점을 해서 작은 영화는 계속 어렵다”면서 스크린 독과점 규제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간 붕괴, 복구는 5~6년 내다봐야"

이날 토론회에선 사자성어 ‘만시지탄(晩時之歎)’이 거듭 언급됐다. 영진위 위원인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 김동현 본부장은 “한국영화가 2년간 망가졌지만, 복구는 5~6년 길게 갈 수 있다. 추가적인 지원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도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조금만 ‘마중물’처럼 힘을 실어주면 선순환이 되어 자금이 돌아올 것이다. 정부도 지원책을 최대한 모색하고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