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탔더니 "왜 나왔냐"…MZ세대 장애인 지옥의 등굣길

중앙일보

입력 2022.04.17 09:00

업데이트 2022.04.17 11:02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잘못된 시위다" vs. "불편함을 호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달 지하철에서 출근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달 지하철에서 출근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가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상당수 시민은 "저상버스도 많고 역사에 엘리베이터도 있어 장애인들이 불편한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사회 시스템이 과거보다 장애인들에게 더 친화적으로 바뀌었다고들 하는데요. 과연 정말 그럴까요? 밀실팀에서 MZ세대 장애인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문턱에 볼라드까지…"왜 나왔냐" 비난에 상처

소셜 벤처를 운영 중인 이유정씨는 10년 째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유정씨는 장애인이 된 이후로 외출할 때 늘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버스나 장애인전용택시보다 제약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저상버스는 배차 간격이 너무 넓고, 장애인 전용택시는 장애등급제 때문에 최근에야 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지하철도 이용하기가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만나는 문턱이나 볼라드도 유정씨에게는 위협요소입니다. 심리적인 부담도 큽니다.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밀실]<제88화>
MZ세대 장애인을 만나다

전에 출근 시간에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탄 적이 있어요. 그때 '왜 이렇게 아침부터 일찍 나와서 난리야'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정말 상처받았어요.

길거리에 설치된 볼라드(차가 인도에 오지 못하게 막는 시설물)를 피해가고 있다.

길거리에 설치된 볼라드(차가 인도에 오지 못하게 막는 시설물)를 피해가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장애인 관련 시설이 고장 난 경우는 흔하게 겪는 일입니다. 슬로프가 설치된 저상버스를 탔는데 4분가량 슬로프가 내려오지 않아 애를 태운 경험도 있습니다.

설치가 돼 있는데도 기사님이 슬로프 작동법을 모르시더라고요. 저상버스로 바뀌고 나서 처음 이용해 보셨대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유정씨는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리프트가 고장 나 있을 때 제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요. 한 정거장을 돌아가거나 다른 수단을 이용해야죠. 이런 일이 반복될 때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들어요.

학교에서도 보기 힘든 장애인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등록 장애인 중 MZ세대에 해당하는 20~39세 인구는 22만 164명으로, 해당 나잇대 인구의 1.6%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정작 MZ세대는 학교에서 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K대학 내에서 학생인권위원으로 활동하는 대학생 신모(20)씨는 "덴마크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거리나 캠퍼스에 휠체어나 목발을 짚은 사람이 많았다"면서 국내 대학 모습과 상반적이라고 전했습니다. 신씨는 "장애 인식 역시 별로 개선된 게 없는 것 같다"면서 "특히 요즘은 반PC(정치적 올바름) 정서가 강해지면서 이준석 대표식 주장을 확산하는 친구들도 많아졌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연세대학교에 다니는 구모(21)씨 역시 MZ세대 사이에서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는 인식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구씨는 "학내 커뮤니티에 보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의견이나 댓글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인증을 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이 커뮤니티에는 "본인들 출퇴근 때 시위 안 당해봤나 보다" 라며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비난하는 댓글이 다수 달렸습니다.

학내 커뮤니티에 달린 장애인 이동권 시위 관련 악플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학내 커뮤니티에 달린 장애인 이동권 시위 관련 악플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교육부가 올해 발표한 '장애인 고등교육지원 종합방안'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한 장애인은 2020년 기준 9717명입니다. 2020년 고등교육기관 전체 학생 수에서 장애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0.4%에 불과합니다.

여행도, 인스타 맛집도 언감생심

MZ세대 장애인들은 MZ세대 특유의 감수성에서도 배제됩니다. 유정씨는 "MZ세대들이 자주 가는 인스타 감성 맛집도 가보고, 데이트도 하고 싶은데 예쁘게 꾸며놓은 곳일수록 문턱이 높아서 휠체어가 더욱 갈 수 없다"면서 "장애인들은 흔히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는 데를 간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취미로 다니는 여행도 장애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여정입니다. 휠체어를 탄 MZ세대 장애인인 박찬미씨는 여행을 갈 때마다 콜택시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어서 친구들을 고생하게 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전에 지하철에서 바퀴가 빠진 적이 있어요. 트라우마로 남았을 만큼 너무 무서웠어요. 저희는 그냥 다니는 것 자체로도 생존의 위협을 많이 받아요.

유정씨는 MZ세대 사이에서 장애인들이 계속 고립되는 현상에 대해 특히 우려를 표했습니다.

최근 이준석 대표 발언을 보면 시민과 장애인을 편 가르기를 하는 것 같아 걱정돼요. 장애인도 시민이고, 이동권은 생활하는 데 중요한 기본권이에요. 세상에는 개성 있고 다양한 장애인들이 많이 있어요. 편 가르기보다는 서로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격 없는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선의나 배려에 기대는 게 아니라 장애인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과연 MZ세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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