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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중립의 역설, 러시아 ‘에너지 무기’ 핵만큼 치명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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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24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러시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우크라이나 가스저장소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우크라이나 가스저장소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52일을 넘긴 가운데 장기전에 돌입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경제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전쟁이 한창 중이지만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꺾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 침공이 거셌던 지난 3월 러시아 국영회사 가스프롬의 경우 3월 주요 해외 시장에서 일일 매출액이 전달보다 오히려 17% 증가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된 이후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에서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외침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경제 제재는 채택되지 못했다. 4월 7일자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루블화 가치를 떠받치는 한,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진단했다.

러시아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데다가 천연가스 최대 수출국이다. 이미 전쟁 전에 수많은 가스관을 유럽에 매설했거나 현재 매설 중이다. 더구나 유럽은 지난겨울 추운 날씨에 바람도 줄어 풍력에너지까지 감소해서 천연가스 수입을 줄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러시아 에너지를 계속 수입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 회사 일부가 지난달 러시아산 석탄 대금을 결제했고, 예정대로라면 이번 달 중에 그 물량이 공급될 것이다. 또한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은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되지 못한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앞서 전 세계의 에너지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자가 있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 그는 3·4대 러시아 대통령을 지냈고, 연속해서 세 번 연임할 수 없다는 헌법에 따라 친구에게 대통령을 맡기고 총리가 된 뒤 다시 6대를 거쳐 7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사실상 2000년부터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야심이 바로 에너지를 통해 러시아를 최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 대니얼 예긴은 저서 『뉴맵』에서 푸틴을 분석하면서, 그의 손에 에너지 무기가 쥐어졌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러시아 당국은 고유가를 활용해 예비비를 마련했고, 경제 제재를 예측한 듯 연속적인 자본통제를 강화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이나 자금의 사용이나 변동을 막고, 자국 기업이 보유한 외환의 80%를 유로나 달러가 아닌 자국 루블화로 환전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유럽 등 ‘비우호 국가’들에 대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대금을 루블화로만 결제하라고 배짱을 퉁기기도 했다. 그 즉시 루블화 가치가 8% 이상 반등하는 등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 확보에 차질이 생길까봐 일사불란한 대응을 못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자 하는 ‘탄소 중립’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유럽은 석탄·석유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인 것이 아니라 부족한 석탄·석유 및 천연가스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는 파이프 관을 러시아에 직접 꽂아두고 있을 만큼 그 의존도가 심히 병적이다.

# ‘아이언맨’과  에너지 자립

수소연료전지로 나는 LIG넥스원 화물운송용 드론. 송봉근 기자

수소연료전지로 나는 LIG넥스원 화물운송용 드론. 송봉근 기자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직접 만든 ‘아크 리액터’라는 소형 원자로를 가슴에 달고 있다. 이 원자로에서 리펄서 건을 발사하는 등 자신이 사용할 3기가와트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하지만 우린 “토니 스타크가 아니다.” 현재까지는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소량의 에너지도 자체적으로 생산해 활용할 수 없다. 그것은 한 국가라 할지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자립의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완전한 자립이 안 된다면 적어도 발전 효율이 높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 급선무다. 발전 효율이 높은 에너지로 원자력을 들 수 있다. 즉 원자력 발전은 투자하는 비용 대비 에너지효율이 높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분명한데, 원전의 수가 화력발전소에 비해 적음에도 불구하고 총 전기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더구나 원자력발전은 연소 없는 핵분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화력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방사성폐기물 처리라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하는 데 상당한 자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진과 같은 단 한 번의 자연재해로 끔찍한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다. 더구나 방사능 누출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이 원전 부지 선정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후손들의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 에너지원이 될 수는 없다.

자연스럽게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에너지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흔히 신재생에너지를 꼽는다. ‘신재생에너지’란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모두 합해서 이르는 말로, 신에너지는 석탄을 액화하거나 수소 또는 산소 등이 전자를 교환하는 화학 반응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또한 재생에너지는 태양광이나 태양열·지열·바람·비·조수 등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 액화석탄과 수소 연료 전지

수소연료전지와 전기배터리 조합의 혼합 하이브리드 수소전기트램. [사진 현대로템]

수소연료전지와 전기배터리 조합의 혼합 하이브리드 수소전기트램. [사진 현대로템]

여기서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 바로 신에너지에 속하는 액화석탄이다. ‘석탄’이라는 말까지 붙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친환경에너지란 말인가? 석탄은 연소될 때 질산과 황산 가스가 다량으로 발생하고, 그을음을 내뿜는다. 이것은 맹독성 물질로 심각한 대기 오염의 주범이다.

현재의 에너지 소비 추세로 미루어 볼 때 석유는 석탄보다 더 빨리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그래서 곧 고갈될 석유를 대체할 하나의 방안으로 석탄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액화석탄이 거론되고 있다. 석탄 자체에 함유돼 있는 황과 질소를 애초부터 제거해 유독 물질의 생성 자체를 막아 매장량이 한정돼 있는 석유를 대체하고, 뿐만 아니라 유독 가스 배출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만 사실 석탄을 액화한다고 해서 연소할 때 본질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는 없다.

수소 연료 전지라고 해도 탄소 배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소 연료 전지는 다른 물질로부터 전자를 빼앗으려고 하는 원자 또는 분자를 이용해 전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리 금속과 아연 금속을 이용하면 아연이 수소 이온들에게 전자를 빼앗기게 되면서 전기에너지가 발생한다.

금속을 이용하지 않고도 수소와 산소를 이용해 전지를 만들려는 시도가 1839년 영국 물리학자 월리엄 그로브에게 있었다. 전자를 ‘폭풍 흡입’하는 산소의 성질을 이용해 산소가 수소의 전자를 얻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각각 음극과 양극에 수소와 산소를 주입해 전해질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고, 산소가 수소 쪽의 전자를 회로를 통해 빨아들이면 전자가 이동하면서 전기가 발생한다. 이 전지는 이후 수소와 산소를 연료처럼 넣어 작동시킨다는 의미에서 수소 연료 전지라고 불렸다. 즉, 어떤 연소도 없이 친환경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전지가 이론상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소 연료 전지를 생산할 때 수소를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은 불가능하다. 현재 수소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도시가스(LNG)의 메테인(CH4)을 이용해야만 한다. 이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의 수소 연료 전지도 완벽한 친환경에너지라 볼 수는 없다.

# 탄소 중립 과도기 때 고민

탈원전을 고수하던 EU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기 직전인 지난 2월 2일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에 위기감을 직감하고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 투자로 인정하는 초안을 발의했다. EU집행위원회가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ESG) 경영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택 기준이 되는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특히 원자력 발전을 포함시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과도한 에너지 의존성은 더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유럽, 특히 독일은 안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성을 계속 높여 왔고, 지난 20년 동안 오로지 환경 하나만을 가지고 에너지 정책을 펴면서 지금 큰 곤란을 겪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는 ‘핵무기’만큼이나 치명적인데, 그 무기는 유럽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에도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의존성이 높으면 불안전한 에너지 공급망과 가격 변동 때문에 경제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에너지 자립만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에너지 정책이다. 그래서 분명 신재생에너지가 더 많이 생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탄소 중립을 현실화하는 에너지 자립 및 에너지 내재화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 의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절충적 에너지 자립안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강대국의 ‘에너지 무기’로 위협받고 있다. 경제적 타격을 보다 적게 받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문제는 안보와 경제, 환경문제까지 총체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저 멀리 탄소 중립이라는 별에 안착하기까지 계단을 올라갈 때 자칫 한 걸음이라도 흔들린다면 우리는 크게 휘청거릴 수 있다. 에너지 의존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발전 효율이 큰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아크 리액터’에 의존적인 아이언맨은 에너지 없이는 거의 죽은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에너지 없이 사는 방법을 실천하면 어떨까? 자동차를 타지 말고, 1회용 테이크아웃 잔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 냉난방 시스템도 되도록 작동시키지 않으련다. 그런데 이제 겨우 4월 중순인데 오늘은 유난히도 덥다. 벌써 한여름 날씨다. 커버를 씌워뒀던 에어컨을 좀 켜야겠다. 도대체 난 언제쯤 에너지를 보다 덜 소비하고 살 수 있을까.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별별명언』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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