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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소생하는 봄, 코로나 멍울 지울 ‘초록 마법’ 기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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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28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앙리 루소 ‘폭포’(1910년). [사진 시카고 미술관]

앙리 루소 ‘폭포’(1910년). [사진 시카고 미술관]

앙리 루소는 왜 평생 가보지도 않은 열대 초록 숲을 지속적으로 그렸을까? 왜 우리는 초록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일까? 이제 곧 4월, 벌써부터 초록물이 땅 위로 올라와 있다. 머지않아 세상은 온통 초록빛이 될 것이다.

우리 눈이 초록을 포함해 다양한 색들을 감지할 수 있는 이유는 빛의 산란(light scattering) 때문이다. 공간이 휘어져 있지 않은 이상 빛은 한 공간에서 최단 시간으로 이동하려는 성질, 즉 ‘직진성’을 갖는다. 아쉽게도 그 직진성으로는 색을 볼 수 없다. 빛깔을 볼 수 있는 것은 빛이 물체의 표면이나 대기 중에 있는 물분자나 미세입자 등에 의해 흩어지기 때문이다.

#광자와 파장으로 보는 빛

빛의 산란과 함께 빛의 흡수도 일어난다. 엄밀히 말한다면 물체의 분자에 광자가 흡수가 되는 것이다. 광자는 빛을 입자로 볼 때 관찰되는 빛의 특징이다. 현대 과학에 알려진 대로,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면 빛의 흡수 역시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빛을 입자로 보면, 빛의 흡수란 광자의 일부분이 빛이 지나치는 물체의 분자에 의해 사라지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적당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광자 하나가 그 에너지를 물체의 분자에 넘겨준 뒤 자취를 감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흰색이었던 빛은 주어진 물체를 통과하고 나면 일정한 에너지를 지닌 광자를 잃게 되고, 그 결과 다른 빛깔을 남기게 된다.

한편 빛을 파장 개념으로 보자면, 빛이 비칠 때 그 물체의 분자에 의해 빛의 특정 파장 영역이 흡수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 다시 말해 가시광선 중에서 보라색은 400나노미터의 파장이고, 붉은색은 730나노미터의 파장 영역을 지닌다. 빛이 물체를 비출 때 그 빛이 지닌 진동수가 물체를 이루는 분자의 고유 진동수와 같게 되면 그 빛은 분자와 공명 상태에 들어간다. 즉 그러한 공명 조건에 일치하는 빛의 파장만 분자에 흡수되는 것이다.

햇빛과 같이 모든 색의 빛을 다 포함한 백색광은 갖가지 파장의 진동 또는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갖는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프리즘과 같은 것에 통과되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처럼 각각의 고유한 색을 띠는 단색광(monochrome)은 한 가지 파장으로 된 진동 또는 모두 동일한 에너지를 지닌 광자로 되어있다.

물체에 흡수되고 남은 단색광은 반사되어 사람의 시신경을 자극한다. 식물로 치자면 초록색으로 보이는 까닭은, 그 식물이 빨간색과 파란색의 빛들을 흡수하고 초록색 빛깔을 반사해 우리의 시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눈에 있는 시신경 가운데 색을 감지하는 것은 원추(원뿔)세포다. 그런데 이때 감지되는 것은 모든 단색광이 아니라 빨강(R), 초록(G), 파랑(B) 세 가지 색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추세포는 세 가지 색에 자극받는 세 종류의 세포만 있기 때문이다. 어떤 원추세포가 자극되는지에 따라 다른 색들이 인지된다. 이를테면 빨강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와 초록을 감지하는 원추세포가 둘 다 자극되면 노란색으로 보인다. 같은 이치로 세 가지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들이 모두 자극되면 그 대상물은 ‘흰색’으로 인지된다.

#식물의 초록색

이제 식물의 초록색은 무엇 때문에 반사되고 그 이외의 색들은 왜 흡수되는 것인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나뭇잎을 녹즙기에 넣고 갈아서 걸러내면 초록색 즙이 나온다. 그 즙을 원심 분리하면 초록색을 띠는 부분은 가라앉는다. 이것은 럭비공 모양을 한 5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엽록체다. 이 엽록체를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내부에 걸쭉한 액체성분인 스트로마가 있고 그 안에 얇은 원판 모양의 막으로 된 주머니들인 틸라코이드가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다면 틸라코이드의 어떤 부분에서 초록색이 기원한 것일까. 틸라코이드는 지질과 단백질들로 되어있는데 그 중에서 유독 두 종류의 단백질만 선명한 초록색을 띤다. 바로 ‘안테나복합체’와 ‘반응중심복합체’라 불리는 것들이다. 원래 대부분의 단백질들은 색깔이 없다. 초록색은 구체적으로 이 두 단백질에만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안테나복합체와 반응중심복합체라는 단백질만 특별하게 초록색을 띠는 것일까. 이 초록색 단백질을 색층 분석하면 청록색, 초록색, 노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분리된다. 화학자들은 청록색 성분을 엽록소a, 초록색 성분을 엽록소b, 노란색에서 주황색 성분을 카로티노이드라고 한다.

안테나복합체의 엽록소는 빨간색과 파란색 파장의 광자를 흡수한다. ‘안테나’라는 이름도 빛의 진동파를 잘 잡아내기에 붙여졌다. 이 복합체가 광자를 흡수하면 에너지가 높아져서 들뜬상태에 놓이면서 불안정하게 된다. 그러면 안테나복합체는 여분의 에너지를 내놓으면서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게 되고, 이 에너지를 반응중심복합체가 붙잡아두어 필수 생존 에너지로 삼는다. 이 전체 과정이 바로 광합성이다.

모든 식물들의 잎사귀는 초록색을 띤다. 그 이유는 식물체 잎사귀 안 속에 들어 있는 엽록소, 즉 엽록체가 빨간색 파장의 영역과 파란색 파장의 영역에 있는 대부분의 빛들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호기성 세균

산소를 매우 좋아하는 세균을 ‘호기성 세균’이라 한다. 이 세균을 엽록소를 지닌 식물성 플랑크톤과 함께 한 공간 안에서 배양시키고 그곳에 빛을 스펙트럼 형태로 쬐어주면 세균은 특정 파장에 모여든다. 그 파장에서 식물성 플랑크톤으로부터 산소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파장의 빛깔에 산소가 많이 생겼을까.

과학자들은 이 실험에 따른 호기성 세균의 분포를 통해서 파란색 파장과 빨간색 파장에 산소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성 세균이 두 가지 파장에서 다량으로 증식된다는 것, 즉 엽록소가 빨간색과 파란색의 파장에서 광합성을 일으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결론은 엽록소가 광합성을 위해서 빨간색 빛과 파란색 빛을 흡수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식물은 초록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광합성이란 잎이 빛의 광자 에너지를 이용해서 산소를 내놓고 식물이 자라도록 해주는 물질들을 합성해 낸다. 그래서 빛에너지, 즉 빛으로부터 온 빨간색과 파란색 파장의 광자는 식물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색을 감지하는 현상이 일치한다고 해서 꼭 동일한 색채를 보는 것일까? 프랑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색감은 체험된 신체 속에 있다”고 했고, 조용미 시인은 『초록을 말하다』에서 “초록은 문이 너무 많아 그 사각의 틀 안으로 거듭 들어가기 위해선 때로/ 눈을 감고 색의 채도나 명도가 아닌 초록의 극세한 소리로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삼월이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산마다 초록 빛깔이 올라왔다. 그런데 필자는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색맹이 된 까닭일까,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산하가 회색빛으로만 보였다. 녹색맹은 원추세포 중 하나가 결핍되었을 때 그 빛깔을 못 보는 현상이라 한다. 적어도 그 세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에도 초록으로 보이던 산하가 봄이 되었는데도 더 이상 초록으로 보이지 않다니….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 6년간 함께하던 반려견이 이틀을 앓더니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까닭인 것 같다.

같은 새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놓인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누군가에게는 생기발랄한 새의 노래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목쉰 구슬픈 울음소리로도 들린다. 색도 마찬가지다. 같은 초록색을 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감동어린 초록빛으로 보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4월의 색으로 보일 수 있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초록빛으로 물드는 계절이 오히려 죽은 이의 부활을 불가능하다 일깨우는 자극이었다. 그의 예민한 가슴은 4월의 초록으로 도리어 멍들었던 것이다.

코로나와 전쟁, 그리고 화마(火魔)로 인해, 자연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초록에 물들고 있다. 지금 그 4월을 앞두고 초록의 멍 자국이 보이는 듯하다. 봄철 만물에 퍼져 있어야 할 초록이 가슴에 모여 피멍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은 초록빛 물든 4월의 산천을 보고 불현듯 가슴에 스미는 고독감을 느낄 것이다.

안테나복합체는 햇빛으로부터 광자를 받아 ‘들뜬상태’가 되었을 때 초과된 여분의 에너지를 내놓는다. 식물은 그 에너지로 어느덧 안정상태로 돌아가 온 몸이 공유할 필수 영양소를 만든다. 초록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아마도 이런 자연의 섭리를 따라, 들뜬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열망하는 일종의 광합성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 광합성으로 초록에 물들어 볼 차례다.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별별명언』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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