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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코앞서 "위안부는 사기"…요즘 수요일마다 벌어지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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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선 집회가 열린다. 집회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다. 고베(神戶)·동일본 대지진 때를 제외하면 수요시위는 30년 동안 빠짐없이 열렸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폭염이나 폭우에도, 수요시위는 이어졌다.

이런 수요시위의 맥이 끊기게 될 우려가 현실화됐다.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열려왔던 수요시위 장소를 반대 단체들이 모두 선점, 집회 신고를 하면서다. 오는 20일 예정된 1540차 수요시위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제1539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제1539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가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의 소녀상 인근서 밀려나는 수요시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 수요시위 측과 자유연대, 엄마부대 등 보수 성향 단체 간 갈등의 골은 깊다. 자유연대 등은 지난 2020년부터 소녀상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위안부는 사기”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유연대 등의 집회로 수요시위는 점차 소녀상으로부터 멀어졌다. 수요시위는 최근 소녀상을 중심으로 좌우 5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 호텔 서머셋팰리스 앞 등에서 집회를 열었다. 지난 2월엔 이보다 더 멀어져 찻길에서 집회가 열렸다. 오는 20일에는 그 장소들마저도 자유연대 등 반(反)수요시위 측의 집회 신고가 마친 상태다.

양측은 고소·고발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3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단체 측과 이용수 할머니는 김상진 자유연대 사무총장 등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했고, 고소인 조사가 진행됐다. 이에 반수요시위 측은 정의연 관계자 등을 맞고소한 상황이다.

지난 3월1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와 보수 성향 단체의 맞불 집회 등이 열린 가운데 경찰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16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와 보수 성향 단체의 맞불 집회 등이 열린 가운데 경찰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뉴스1

정의연, 경찰에 민원 제기…“조치 안 한다”

정의연은 시위 보장 방안 및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훼손 대응 등을 경찰에 촉구하고 있다. 이를 골자로 한 민원을 지난 8일 경찰에 냈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상 행정기관 등의 위법·부당 또는 부작위(不作爲)를 포함한 소극적 처분 등으로 권리를 침해받았을 경우 낼 수 있는 ‘고충 민원’이라는 게 정의연 측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 권고가 민원 근거 중 하나가 됐다. 인권위는 지난 1월 “세계 최장기 집회(수요시위)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인권의 기본원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정의연 측은 “경찰은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그간 양측 집회 상황에 대해 충분한 경력·장비를 동원, 안정적인 현장 관리에 집중했다는 입장이다. 인권위 권고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검토했으며 돌발 상황 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정의연은 경찰 답변이 오는 대로 내용을 검토한 뒤 20일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에서 반일행동 회원들이 일본의 공식 사제와 친일 청산을 촉구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 소녀상 앞에서 반일행동 회원들이 일본의 공식 사제와 친일 청산을 촉구 하고 있다. 뉴스1

맞고소·고발에 이어 소송전으로 격화될까

일각에선 양측의 갈등이 고소·고발 사건을 넘어 민사 등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인권위 권고 등이 이뤄진 상황임에도 계속해서 수요시위가 열리지 않을 경우 정의연 측이 국가의 부작위 또는 상대방 측의 공격을 문제 삼아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 청구 소송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정의연 측이 경찰에 제기한 민원 답변이 계속해서 늦어질 경우엔 ‘부작위 위법 확인’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일부 있다.

다만 헌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집회 관련 명백한 위법 사항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소송은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인권위 권고 및 집회·시위 자유 보장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소송을 통해서 다퉈 볼 여지는 있지만, 부작위로 인한 위법성 여부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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