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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금은 제2의 세금"…새 정부의 ‘윤미향 방지법’ 핵심은

중앙일보

입력

기부심리 얼어붙게 한 윤미향·새희망씨앗 사건

어금니 아빠, 새희망씨앗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진 2017년 12월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에 구세군이 자선냄비 주변으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당시 사랑의열매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의 모금액은 2017년 12월 9일 기준 648억원으로 목표액인 3994억원의 약 16.2%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뉴스1.

어금니 아빠, 새희망씨앗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진 2017년 12월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에 구세군이 자선냄비 주변으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당시 사랑의열매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의 모금액은 2017년 12월 9일 기준 648억원으로 목표액인 3994억원의 약 16.2%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뉴스1.

“공익법인 등에 대한 기부금, 즉 국민 성금은 ‘제2의 세금’이다. 기부자의 작은 정성이 사회에 온기로 전해질 수 있도록 기부금을 받는 단체는 투명하게 거두고 단체의 목적에 맞는 사업을 설계해 정해진 절차와 방법대로 지출해야 한다”

2020년 8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 일부 개정 법률안’ 제안설명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윤미향 사태’로 시민단체의 불투명한 회계처리 문제가 공론화한 직후다.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향후 과제로 ‘기부금 단체 국민 참여 확인제도(윤미향 방지법)’을 도입·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보다 앞선 2017년엔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윤항성 새희망씨앗 회장은 주식회사 새희망씨앗과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을 설립, 두 법인을 함께 운영하면서 2014년부터 3년 5개월간 127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았지만 실제로는 약 2억원만 기부해 논란을 빚었다. 윤 회장은 결국 2019년 상습사기, 업무상횡령 등으로 검찰 기소돼 징역 6년형을 받았다.

익명기부자 영수증 발급, 전용계좌 사용 등 제도개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 10인이 2020년 8월 발의한 기부금품법 개정안 제안이유 발췌.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 10인이 2020년 8월 발의한 기부금품법 개정안 제안이유 발췌.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이런 사건을 겪으며 기부금 관련 법안이 앞다퉈 나왔다. 기부금 모집 시 전용계좌 사용, 기부금 공개내역 세분화 등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 외에 ‘그럼에도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부금품 모집등록 금액을 상향(1000만→2000만원)해야 한다’ 등 내용을 담은 기부금품법 개정안 등 20여개가 발의됐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14일 현재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이중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안을 중심으로 기부금 공개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이다. ‘먼저 기부금 모집·집행 투명성이 담보돼야 향후 기부문화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해당 법안의 핵심은 크게 4가지다.

우선 ▶연간 120만 원을 초과한 고액 기부금에 대한 기부자 명단 공개 ▶현장·현금 모급 및 익명 기부도 영수증 발급 ▶수입·지출항목 전체를 사업단위별·비목별(인건비, 식비, 물품구입비 등)로 세분화해 행안부 기부금통합관리시스템에 공개하는 것 ▶(기부금) 전용계좌사용 의무화 등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단체 홈페이지 등에 위반 사실을 공개해 제도 실효성을 높인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文정부 도입한 기부금관리시스템 보완·강화

현행 행안부 '1365기부포털'에서도 시민단체의 기부금품모집 및 사용명세 보고서 등을 볼 수 있지만 인수위는 현행보다 공개 내용을 더욱 상세화한다는 계획이다. [1365 기부포털 캡처]

현행 행안부 '1365기부포털'에서도 시민단체의 기부금품모집 및 사용명세 보고서 등을 볼 수 있지만 인수위는 현행보다 공개 내용을 더욱 상세화한다는 계획이다. [1365 기부포털 캡처]

새 정부의 제도 개선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연속성이 있다. 기부금통합관리시스템은 현재도 운영 중으로 지난 2020년 행안부가 8억 5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을 시작해 2021년 말 완성했다. 현재 1365기부포털 사이트에서 ‘재단법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를 검색하면 연도별로 기부금품 모집계획서부터 기부금품 사용계획서, 기부금품 모집 완료 보고서,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명세 보고서, 회계감사보고서 등을 볼 수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그러나 “(현행 시스템에선) 기부금 모집 목표와 모집총액만 나와 있을 뿐 어디서, 누가 기부했는지가 뜨지 않고, 지출내역도 세부항목은 잘 알 수 없는 맹점이 있어 개선하려는 것”이라며 “특히 기부금은 세액공제가 되기 때문에 내역을 상세히 공개할 의무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도 총자산 5억 원, 총수입 3억 원 이상의 시민단체만 사업별 지출내역을 공개하게 돼 있는 맹점도 고려됐다.

“무턱대고 공개하면 오해, 혼란, 시민사회 위축”

지난달 10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외부에 걸린 손편지 모습. 뉴스1.

지난달 10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외부에 걸린 손편지 모습. 뉴스1.

시민사회에선 정책 변화로 인해 빚어질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소재 한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어떤 기부금이냐에 따라 인건비로 쓸 수도, 못 쓸 수도 있다”며 “만약 감사한다면 기금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건비를 써야 하는지 일일이 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중간 설명 없이 무작정 ‘인건비에 얼마를 썼다’고 공개할 경우 생길 오해나 혼란도 있을 수 있다”며 “국가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영세 시민 단체들이 나서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치 공공기관이 하듯 낱낱이 감사해서 밝히라고 하는 건 외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도 “시민단체의 자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 계류된 기부금품 개정안에 대해 국회가 먼저 합의를 해야 한다”며 “기부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건 개인정보보호 이슈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직은 모든 시민단체로 공개 대상을 확대하자는 논의까지 이뤄진 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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