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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거지 피하려다 이자 폭탄 맞은 영끌족…주담대 최대 6% 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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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653조9072억원으로 전월보다 5조2052억원 늘었으며 2월말 기업대출 잔액이 648조7020억원으로 전월 대비 4조6402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도 커졌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대출 관련 창구의 모습. [뉴스1]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653조9072억원으로 전월보다 5조2052억원 늘었으며 2월말 기업대출 잔액이 648조7020억원으로 전월 대비 4조6402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도 커졌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대출 관련 창구의 모습. [뉴스1]

맞벌이 직장인 박모(33)씨는 2020년 말 서울 종로구의 10억 상당의 아파트를 구매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4억2000만원을 마련하고 부족한 자금은 신용대출과 부모에게 빌린 돈으로 메웠다. 부부가 저축한 3억원을 제외하면 집값의 70%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늘어나는 이자다. 처음엔 매달 95만원 수준이던 주담대 이자가 지난달엔 137만원으로 늘었다. 변동 금리를 선택한 탓이다. 여기에 신용대출과 부모에게 빌린 돈의 이자까지 더하면 부담은 더 늘어난다.

박씨는 “당시에는 뛰는 집값을 보며 전세로 살다가는 벼락 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무리해서 집을 샀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기준금리가 또 올랐다는 뉴스에 아내와 지출을 더 줄이자는 얘기를 했다”며 “저녁 식사는 가급적 집에서 하고 다음 달 돌아오는 헬스장 재등록은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긴축의 시대가 열리며 영끌족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020~21년 낮은 금리로 빚내서 집을 산 이들은 요즘 늘어나는 이자 부담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영끌족’ 박씨 부부 이자 얼마나 늘었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영끌족’ 박씨 부부 이자 얼마나 늘었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4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혼합형, 연 4.44~5.82%) 상단은 6% 선 코앞까지 올랐다. 최고 금리가 이미 6% 선을 넘어선 은행도 등장했다. 지난해 8월 말(연 2.92~4.42%)과 비교하면 최고·최저금리가 평균 1.4%포인트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2.62~4.19%에서 3.63~4.89%로 뛰었다. 신용대출(1등급·1년 만기) 금리(연 3.71~4.46%)도 8개월 만에 0.29~0.69%포인트 상승했다. 대출 시장에서 2%대 금리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은행권에선 연내 주택담보대출의 최고 금리가 7% 선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린 데다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나오면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권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금융채(5년물) 등 지표금리가 오르고 자금 조달 비용이 비싸진다.

영끌족의 이자 상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경우 가계의 이자 부담(60조9000억원)은 2020년 말보다 3조2000억원 늘 것으로 추산했다. 대출자 1인당 연 이자 부담(305만8000원)은 16만1000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추산대로라면 최근 9개월 동안 기준금리 1%포인트 인상에 따른 1인당 이자 부담 증가액은 64만4000원 정도다.

더욱이 대출자 10명 중 7명은 금리를 고정금리보다 금리 변화에 영향을 받는 변동금리를 택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2월 은행권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잔액기준)은 76.5%로 2014년 3월(78.6%) 이후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50% 안팎이었다가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변동금리 비중이 급증한 것이다.

빠르게 오르는 대출금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빠르게 오르는 대출금리.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영끌족 뿐이 아니다. 빚을 내서 가게를 유지해온 자영업자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사업용으로 돈을 빌리는(개인사업자 대출) 동시에 집을 살 때 대출(가계대출)을 받기 때문에 금리 오름세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약한 고리인 셈이다.

14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09조6000억원(개인사업자 대출+가계대출 잔액)에 이른다. 코로나19유행 직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32.8% 급증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 속 대출 금리 급등은 대출의 부실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무리하게 빚을 끌어 쓴 영끌족과 자영업자 가운데 취약차주 비중이 늘고 있어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대출 차주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청년층(6.6%) 비중이 다른 연령층 평균(5.8%)보다 높았다. 직종별로는 자영업(21.2%) 비중이 2019년(19.6%)보다 1.6%포인트 증가했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거나,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차주를 의미한다.

금리 인상기에 부실 대출이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 기준금리의 점진적인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빚을 과도하게 늘린 가계는 원금을 줄이고, 기업은 추가 대출을 자제하고 부채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자영업자는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생활 자금을 빌린 경우 상황이 갑자기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을 미리 파악해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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