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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를 외면한 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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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국가 지도자의 동선(動線)에는 국정운영 방향이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해외나 지역 방문 모두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움직일 때마다 “거긴 이런 이유로 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야 할 데를 안 갔을 때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 5년간 대통령 방문 여부가 자주 논란이 된 곳이 있다. 현충원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있는 대전이다. 현충원은 보훈(안보) 시설이고, KAIST는 국가 핵심 과학기술 인프라여서다.

대전현충원이 대통령 단골 방문 장소가 된 것은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이후다. 당시 대통령은 이명박이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1, 2주기 추모식 때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이후에도 그는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수년간 추모식에 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재임 기간 4년 동안 3차례 추모식에 참석했다. 서해수호의 날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희생된 서해수호 55용사를 기리기 위해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3월 서해수호의 날 추모식에서 천안함 유족 윤청자 여사로부터 질문을 받고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3월 서해수호의 날 추모식에서 천안함 유족 윤청자 여사로부터 질문을 받고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5년간 추모식에 2번 참석했다. 취임 첫해인 2018년에는 해외, 이듬해에는 대구 방문을 이유로 패싱했다. 대구 방문 시 칠성시장에서 청와대 경호원이 기관총을 들고 있는 장면이 노출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서해수호의 날에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4·15 총선 20일 전이었다. 이때 천안함 피격으로 전사한 민평기 상사 어머니 윤청자 여사는 “천안함 피격이 누구 소행인지 말씀해달라”고 물었고, 대통령은 “정부 공식입장에는 한 치의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임기 중 마지막인 올해 행사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동선 때문에 대통령이 안보를 소홀히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이 대전에 오면 찾았던 또 다른 곳은 KAIST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 1차례 이상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졸업식에 참석, “우수 과학기술인을 정부가 평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취임 후 KAIST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지난해 KAIST 50주년 기념식에 영상 축사를 보낸 게 전부다. 문 대통령이 KAIST에 오지 않은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공교롭게도 KAIST를 포함한 일부 연구 분야는 최근 5년간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탈원전 정책 여파로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 학생은 급감했다. 원자력 관련 기관에는 환경운동가 등이 잇달아 임명됐다.

다음 달 10일이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국가 지도자의 동선이 국민에게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