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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정국에 한동훈 택했다…尹 당선인 '마이웨이'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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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조각(組閣) 인선이 ‘협치 실종’ 논란을 촉발시켰다. 특히, 윤 당선인이 13일 새 정부 2차 내각 인선을 발표하면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을 놓고선 벌써부터 격랑이 일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배제를 공언했던 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에는 정치인 대신 최측근을 앉힌 것이다. 정치권에선 윤 당선인이 당선 직후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는 한 발언이 공염불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윤 당선인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인철 전 한국외대 총장, 외교부 장관 박진 의원, 통일부 장관 권영세 의원,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전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환경부 장관 한화진 한국환경연구원 명예연구위원, 해양수산부 장관 조승환 전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영 의원 등을 지명했다. 조각 명단과 별도로 윤 당선인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에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내정해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인선의 꽃이랄 수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외교·안보 진용의 핵심축인 외교부와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됐지만, 여론의 관심에선 뒤로 밀렸다. 정치권과 세간의 시선은 한 후보자에게 집중됐다.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20여년간 법무부와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법무 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사법 시스템 정립에 적임자”라고 말했다.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어떤 역할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윤 당선인은 “절대 파격 인사는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도 가지고 있다. 경제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무행정의 현대화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사법 제도를 정비해 나갈 적임자”라고 부연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대응 차원이 아닌가’라는 질문엔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후보자도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서 공정성 우려가 나온다는 지적에 “공정과 정의에 대해 뜻을 같이 했을 뿐, 인연에 기대거나 서로를 맹종하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가 아니다”며 “지금껏 했던 방식과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윤 당선인은 한 검사장에게 ‘칼을 거두고 펜’을 쥐어 줬다”는 글을 쓰며 여론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한동훈 카드’를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 완전 박탈)’과 연결짓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윤 당선인과 가까운 한 법조계 인사는 “당초 한찬식 전 동부지검장을 유력하게 검토했는데, 민주당이 누른 ‘검수완박’ 버튼에 윤 당선인이 ‘한동훈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법무부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상설 특검과 이번 인사를 연결짓는 시각이 많다. ‘검수완박’ 완결로 검찰의 수사권이 없어지더라도 법무부 장관이 상설특검을 발동할 수 있는 현행법에 따라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장동 의혹 등에 칼을 댈 거란 논리다. 한 후보자는 대장동 특검 가능성에 대해 “아직 사안을 알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경솔한 문제 같다”고 말을 아꼈다.

윤 당선인은 민정수석실의 공직 인사검증 기능도 법무부와 경찰에 넘기겠다고 했다. 이는 대통령 최측근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아 민정수석 역할까지 겸하는 사정 기능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셈이다. 검찰 수사권 강화 공약에 이어 한 후보자 지명까지 더해지면서 “검찰을 통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복수심에 불타는 한동훈을 지명했다는 것은 정치 보복을 실현할 대리자를 내세운 것”(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란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윤 당선인의 충암고ㆍ서울 법대 직속 후배로 인수위에서 인사 추천을 담당해왔다. “윤 당선인이 아주 신뢰한다”(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평가를 받는 핵심 측근이다. 애초 윤 당선인측은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중립을 위해 법무와 행안 장관 두 자리엔 정치인을 배제한다”고 말해왔다. 공언한 대로 정치인을 배제하는 대신 법무부 장관엔 자신의 복심을, 행안부 장관엔 신뢰하는 최측근 후배를 선택한 모양새가 됐다. 당장 민주당에선 “협치의 기대를 깨끗이 접겠다”(오영환 원내대변인)라거나  “앞으로 5년이 정말 캄캄하다”(박주민 의원)는 비판이 쏟아진다.

권영세 후보자는 윤 당선인과 고시 공부를 같이 한 검사 선후배 사이고,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 또한 서울대 법대 선배다. 두 후보자는 각각 4선 의원으로, 중요한 조언자이자 대선 캠프 핵심 멤버로 활동해왔다. 익명을 원한 한 국민의힘 중진은 민주당이 170석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극심한 여소야대 정국을 거론하면서 “탕평과 협치에 기반한 통합 정치를 기대했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인선은 승자 독식의 낡은 정치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0일 첫 조각 발표 자리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할당이나 안배를 하지 않겠다. 각 부처를 유능하게 맡아서 이끌 분을 찾아 지명하다 보면, 지역·세대·남녀 등이 균형 잡힐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1·2차 조각을 통해 드러난 장관 후보자 16명은 영남 출신이 7명, 호남 출신은 1명이다. 대선 때 “새 정부에선 30대 장관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공언했던 것과 달리, 30대는 없고 40대(한동훈 49세)도 1명이다. 공동정부 구성을 약속한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추천 인사도 배제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2차 내각 발표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이번 내각 인선은 단순히 측근 몇 명의 전면 등장 정도로 설명될 만큼 단순하지만은 않다. 윤 당선인은 이날 인선 발표 뒤 “1차 인선된 일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된다”며 관련 입장을 묻자 “거의 뭐 듣지 못한 얘기다. 문제가 있으면 취재를 해서 보도를 좀 하시면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이 또한 ‘마이 웨이’의 뉘앙스가 담긴 것으로,인수위에선 “윤 당선인이 인사청문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한다. 반면 민주당은 “윤 당선인에게 대통령직은 친한 사람 장관 시켜주는 자리인가”라며 벼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된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 윤 당선인은 “다년간의 공직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성공적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른바 ‘경제통 정책통 비서실장’이 내정된 것인데, 향후 역할에 대해 김 내정자는 “청와대가 국정을 통제·지휘하고 군림하는 측면을 배제하란 취지”라며 “윤 당선인은 국민 통합과 경제살리기라는 국정 철학 중에서도 특히 경제를 중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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