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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이그가 만루홈런 친 날, 고척돔 관중은 774명

중앙일보

입력

MLB에서 온 화제의 외국인 선수 야시엘 푸이그(키움)가 지난 12일 NC전에서 만루홈런을 치는 순간. 하지만 고척스카이돔 관중석은 텅 비어있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MLB에서 온 화제의 외국인 선수 야시엘 푸이그(키움)가 지난 12일 NC전에서 만루홈런을 치는 순간. 하지만 고척스카이돔 관중석은 텅 비어있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야시엘 푸이그(32·키움 히어로즈)는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으는 외국인 선수다. 메이저리그(MLB)에서 홈런 132개를 치고 한국에 온 그는 지난 12일 홈구장 고척스카이돔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KBO리그 첫 만루홈런을 터트렸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관중은 고작 774명. 고척돔 입장 가능 관중 수(1만6200명)의 5%도 안 되는 숫자다.

2016년 고척돔 개장 후 프로야구 경기 관중 수가 1000명에 못 미친 건 12일이 처음이다(코로나19 여파로 관중 입장이 제한된 2020~2021년 제외). 종전 최소 관중은 2019년 4월 10일 KT 위즈전에서 기록한 1158명인데, 그날보다 384명이 덜 왔다. 키움 구단이 과거 홈구장으로 쓰던 목동 야구장 시절을 포함해도 가장 적은 관중이다. 목동에선 2009년 4월 21일 한화 이글스전을 찾은 918명이 최소 관중 기록이었다. 13년 만에 구단 사상 최소 관중과 고척돔 최소 관중 기록을 동시에 바꾼 하루였다.

악재가 없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여파가 완전히 잦아들지 않았다. 관중 100% 입장이 허용됐다 해도, 아직은 사회적으로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다. 고척돔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취식이 금지된 구장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지난 3일 개막 2연전이 끝난 뒤 질병관리청으로부터 '고척돔은 실내 구장이라 관중이 취식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았다. 평일 저녁의 야구장 취식 금지 지침은 흥행에 타격이 크다.

그러나 12일 NC전 관중 수에 키움 구단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은 조건에서 열린 5~7일 LG전(평균 2219명) 관중의 35%에 그치는 점만 봐도 그렇다.

12일 NC전에서 10-0으로 승리한 뒤 그라운드에서 인사하는 키움 선수단. 그러나 고척스카이돔 관중석은 텅 비어 있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12일 NC전에서 10-0으로 승리한 뒤 그라운드에서 인사하는 키움 선수단. 그러나 고척스카이돔 관중석은 텅 비어 있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여전히 관중 동원력이 취약한 키움은 원정팀의 인기도에 따라 홈 관중 수 편차가 크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데도 팬들의 충성도가 높지 않다. 음주운전 '삼진 아웃'을 당한 강정호 영입을 다시 시도하고, KBO리그에서 영구 실격된 이장석 전 대표이사 관련 의혹을 계속 키우는 모습에 '팬심'은 갈수록 싸늘해진다. KBO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와 역대 최고 경력의 외국인 타자 푸이그를 앞세워도 불명예를 회복하기 어렵다.

심지어 12일 키움과 맞붙은 NC는 지난 시즌 방역 수칙을 위반한 술자리 파문으로 KBO리그 중단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팀이다. 가뜩이나 비인기 구단으로 분류되는 두 팀이 '사고뭉치' 꼬리표까지 달고 있으니 팬들의 발걸음이 돌아서는 게 당연하다.

고척돔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KBO리그 흥행 적신호는 다른 구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올 시즌 45경기를 치른 12일까지 총 관중 34만6202명, 평균 7693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총 54만1489명, 평균 1만2033명)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아직 매진된 경기도 나오지 않았다. 12일 잠실구장에선 8연승의 SSG 랜더스와 7승 1패의 LG가 맞붙었지만, 관중은 6028명에 그쳤다. 따뜻한 날씨와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라 불리는 인기 구단의 빅 매치. 흥행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졌는데도 예매 관중이 4000명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달 취임한 허구연 KBO 총재는 "지금 KBO리그는 9회 말 1사 만루의 위기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 최고 인기 프로 스포츠의 자부심을 내세우던 프로야구가 일부 열성 팬만 열광하는 마니아 스포츠로 변질될 위기다. 야구 관계자들은 "아직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며 애써 위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더는 기댈 핑계가 없어지는 순간, 위기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도 있다. '774'라는 숫자가 불혹의 프로야구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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