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공정위, 민주노총 첫 제재 나선다…쟁점은 ‘노동자 맞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굴착기(포크레인) 기사인 김모(61)씨는 지난해 10월 4개월간 일하던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쫓겨났다. 건설사로부터 나오지 말라는 연락을 들은 직후 해당 현장엔 민주노총 소속 굴착기 3대가 투입됐다. 민주노총이 자신들 기계를 써달라며 소음을 유발하고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방해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 2월 부산의 한 공사현장 앞을 가로막은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 굴삭기지회. 조합원 기계 임대 및 채용 요구를 들어달라는 게 목적이다. [건설기계연명사업자협의회 제공]

지난 2월 부산의 한 공사현장 앞을 가로막은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 굴삭기지회. 조합원 기계 임대 및 채용 요구를 들어달라는 게 목적이다. [건설기계연명사업자협의회 제공]

주모(47)씨는 지난해 민주노총 조합원 신분으로 부산의 공사현장에 굴착기 기사로 참여하던 중 노조의 작업 중단 지시를 거부했다. 노조 측이 “건설사 상대로 쟁의를 하니 작업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계약에 따라 일하겠다고 한 것이다. 주씨는 그 이후로 더는 현장에 나올 수 없었다. 건설사 측에서 “노조 지회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투입할 수 있다”고 하면서다.

“우리 조합원만 써라” 공사 방해

11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부산사무소는 최근 이 같은 행위를 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에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건설사에 압력을 행사해 비노조원의 계약을 해지하게 한 행위자에 대해 검찰 고발 의견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공정위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산하 지부·지회에 대해 ‘건설사 채용 강요’ 행위로 20건을 조사하고 있다. 공정위 부산(15건)·대구(4건)·대전(1건)사무소 등 전국 동시 조사다.

지난 2월 노조가 공사현장 입구를 막으면서 덤프트럭·지게차 등이 입구에 들어가지 못 하고 있다. [건설기계연명사업자협의회 제공]

지난 2월 노조가 공사현장 입구를 막으면서 덤프트럭·지게차 등이 입구에 들어가지 못 하고 있다. [건설기계연명사업자협의회 제공]

공정위는 건설사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로부터 피해 진술을 확보했다. 이를 종합하면 노조는 공사를 진행하는 건설사에 노조 소속 건설기계만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집회에 나선다. 공사현장 통로를 막아 다른 건설기계가 못 들어가게 하고 조합원들은 레미콘·덤프 운송 중단 등으로 작업을 거부하는 방식이다. 공사 기일을 맞춰야 하는 건설사가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업자냐, 노동자냐 다툴 듯

공정위는 2020년부터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이 같은 채용 강요가 다수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부·울·경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지역 건설지부가 규모를 키웠고, 일감을 따내기 어려워진 사업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세력이 커지는 악순환이 벌어지면서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를 발송하면서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불공정거래행위 강요)를 적용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측이 “우리는 사업자단체가 아닌 노동조합”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심의 과정에서 다툼이 예상된다. 이 같은 이유로 이들은 공정위 현장조사도 거부해왔다. 노조를 사업자단체로 보고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분한 사례는 지금까지 한 건도 없다.

기계 임대까지 하는데…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건설 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1월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건설 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쟁점은 노조를 사업자단체로 볼 수 있느냐다. 공정위는 회원 중 사업자가 2명 이상이라면 사업자단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덤프‧굴착기 기사 등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지위를 갖는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노조 가입자 중엔 건설기계를 20대 등록하고 임대를 하는 사업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특고 이중 지위를 갖는다고 해도 여러 대 건설기계를 가지고 임대하는 노조 가입자들이 있는 만큼 사업자단체가 맞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 1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울릉지회에 대해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로 시정권고했다. 개별 사업자가 건설사와 계약으로 결정해야 하는 굴착기 등 임대 가격을 노조가 일괄적으로 결정한 행위를 적발해서다. 그러나 울릉지회가 “사업자단체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공정위 심의가 열릴 예정이다. 사업자단체성 쟁점을 판단하는 1차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조사는 정부가 지난해 10월 구성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 활동으로 본격화했다. TF 활동은 종료했지만 차기 정부에서 공정위의 노조 조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공약으로 밝힌 바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