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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명묵이 고발한다

한국 정치, 군대 빌미로 BTS 이용하는 짓 멈춰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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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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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인수위원장(왼쪽)이 BTS 소속사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을 만나면서 BTS 군면제 얘기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래픽=전유진

안철수 인수위원장(왼쪽)이 BTS 소속사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을 만나면서 BTS 군면제 얘기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래픽=전유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방탄소년단(BTS)이 다시 논란이다. 발단은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하이브(BTS 소속사) 방문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새 정권이 엔터테인먼트 업계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인 BTS의 병역 문제를 허니문 기간에 해결해주고 하이브로부터 여러 협조를 얻으려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안 위원장은 "병역 문제는 의제에 없고, K 컬처 전반을 논의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 했으나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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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이 지난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취임식에 BTS가 공연하느냐"는 질문 을 받고는 “논의 중”이라고 답하면서 논란은 들끓었다. 속된 말로 ‘그림’이 그려지기에 정황이 좋았다. 신용현 인수위 수석 부대변인이 "병역 문제 합의나 취임식 공연 등 어떤 것도 추진된 바 없다"고 해명하면서 일단락됐으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마다 등장한 스타들

나는 박주선 위원장이 “논의 중”이라고 말한 게 대중문화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보진 않는다. 탄핵 직후 선거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수위를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채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면, 대통령 취임식 무대에 인기 대중문화 스타가 서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이 참석한 걸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는 당대 최고 인기 보이그룹 god가 공연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는 김장훈과 SS501,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는 바로 전 해 강남스타일로 일약 월드 스타가 된 싸이의 공연이 있었다. 아마 BTS의 취임식 공연도 그런 맥락에서 등장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이클 잭슨은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 왜 유독 2022년 취임식에서 인기 가수의 공연이 문제가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정치도, 대중문화의 분위기도 모두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의 논란은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고, 특정 정치 진영과도 상관없는 일이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BTS와 함께 출국했을 때도 비슷한 구설에 휘말렸다. 앞서 2017년 문 대통령 내외의 중국 방문 당시 아이돌 그룹 엑소와 배우 송혜교 등과 동행하고,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받자 문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로 봉준호 감독과 출연 배우들을 불러 함께 오찬을 했을 때도 비판 여론이 꽤 컸다. 집권 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연예계 스타를 동원해 지지를 갈구하고, 비판적인 연예인들에게는 불이익을 준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문 정부에서 크게 늘었다.

정치 분열에 연예인 동행은 늘 논란 

여기에는 한국 정치 자체가 극단적으로 분열된 현실도 크게 작용했다. 일단 대선이 끝나면 당선인을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정권의 획득(또는 상실)이 양측 정치 세력과 그 지지자들에게 필사의 투쟁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런 정서는 차츰 사라져 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그리고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내가 싫어하는 대통령은 '저들 대통령'이지 '우리 대통령'은 아니라는 반발은 선거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격화하니 정파를 초월한 국가적 행사로 간주해온 취임식 같은 영역에도 정파적 논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이 하는 일에는 늘 ‘정파적 목적으로 연예인을 동원하느냐’는 식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얘기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행사가 아니라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이 연예인과 동행하는 건 뭐든 정파적 시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격려하는 오찬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격려하는 오찬을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앞서 강조한 10년간 대중문화의 위상 변화가 이런 인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미디어의 파편화 경향이 강해지면서, 모든 유명인의 ‘팬덤화’ 경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그리고 팬덤화의 필연적 결과로, 서로 상대보다 우위라는 걸 증명하고자 하는 팬들의 ‘팬덤 전쟁’은 빠르게 일상화했다. 팬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물론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팬덤의 결속력을 해칠만한 약점을 잡히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다. 팬들이 데뷔 전 학교폭력이나 멤버 간 불화설 등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런 논란이 팬덤 전쟁에서 밀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탓이다. 특정 진영의 정치권이 어느 특정 그룹에 특혜를 주는 일도, 팬덤 전쟁에서는 정말 좋은 공격 거리가 될 수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정치적 거래를 통해 불공정한 특혜를 얻었다는 빌미만 있어도 승리를 위한 가열찬 전투를 벌이는 전선이 형성된다. 팬들 입장에서는 특혜라는 이름으로 이런 불필요한 약점에 발목 잡히느니 차라리 내버려 두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무너진 폴리테이너 인기 

정치·사회 문제에 활발히 목소리를 내는 폴리테이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한 것도 한 요인이다. 진보적 성향의 폴리테이너들은 보수 정권 시절 거침없는 사회 비판으로 좋은 이미지를 형성했다. 진영이 아닌 사회적 상식에 대한 문제 제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폴리테이너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입을 다물거나 정권 입맛에 맞는 말만 하자, ‘정파와 상관없이 사회적 상식을 옹호한다’는 폴리테이너 이미지는 빠르게 무너졌다. 대신 연예인도 얼마든지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정파성에 복무한다는 냉소가 자리 잡았다. 이런 냉소는 정치적 반대파들이 정치와 대중문화의 결탁을 비난할 수 있는 중요한 정서적 원천이 됐다.

지난 2019년 가수 이승환(왼쪽 두번째)은 방송인 김제동(맨 오른쪽),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 세번째) 등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승환 페이스북]

지난 2019년 가수 이승환(왼쪽 두번째)은 방송인 김제동(맨 오른쪽),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 세번째) 등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승환 페이스북]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치와 대중문화 사이의 잡음은 당분간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여론 지형은 크게 달라졌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지가 생각보다 크다.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연예계 스타들만 참여시키면 국민적 지지나 응원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이 보편적인 듯하다. 하지만 현실에선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라도 대중문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대중문화 안에서는 상처를 만들 뿐이고, 정치적으로도 오히려 손해만 될 따름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18년 9월 유엔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서 BTS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18년 9월 유엔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서 BTS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BTS의 병역 문제가 대표적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한국의 영예를 드높인 BTS에게 병역 면제 내지는 특례를 줘야한다는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막상 당사자들은 "때 되면 입대하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는데도, 정치권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병역 특례를 먼저 알아서 챙겨주겠다고 나선 모양새다. BTS에게 병역 특례를 제공하면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를 비롯한 아이돌 팬덤이 너도 나도 정치적으로 환호를 보낼 것으로 기대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과거처럼 “국위를 선양하고 온 이들에게 걸맞은 보상을 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또 연예인 스스로도 “유엔 총회나 대통령 취임식 같은 큰 행사에 대통령과 함께 설 수 있는 영예”에 감복하는 시대도 아니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무언가 특혜를 ‘하사’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은, 정작 발의자들은 전혀 책임 지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류되며 오히려 BTS 멤버들의 병역 수행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게만 만들었다. 이러니 정치가 병역이라는 약점을 가진 대중문화를 쥐고 흔들며 무언가를 얻어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고, 또 반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계가 정치권에 로비를 해서 특혜를 받으려 한다는 음모론도 자꾸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그래픽

그래픽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가수 서태지 팬클럽이 “서태지 은퇴를 막아달라”는 청원을 하자, "나도 서태지의 성취에 감탄하지만 정치가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라는 새 패러다임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토록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거대해진 시대에 과연 어디까지가 간섭이고 어디까지가 지원인지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최소한 정치가 대중문화의 달라진 위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슈가의 별별시각]"군대는 때 되면 알아서들 갈 테니까"

BTS 래퍼 슈가는 지난 2020년 Agust D라는 이름으로 낸 믹스테이프 'D-2' 수록곡 '어떻게 생각해?(What do you think?)'에서 간접적으로 군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슈가는 발매 후 브이로그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는 "원래 2018년 초 가사 대부분을 썼었다"며 "(발매된 곡은) 가사가 많이 수정된 것"이라고 했다. 또 "수정하지 않고 그냥 나갔다면, 상상하기도 싫네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을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가사 발췌.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난 미안한데 XX X도 관심 없네

내 통장에 0 열 개 들은 청춘을 담보로 한 돈
I got a big house, big cars, big ring
뭐든지 가져와봐 줄게 내 블랙 카드
미디어의 혜택을 받은 XX들은 나보다 방송을 많이 타고
돈 자랑하는 애XX들 벌어봤자 얼마나 벌었겠나 싶어
woo woo 그래 이제 돈 자랑들은 귀엽지
woo woo 분배는 니 급 쯤에서나 아깝지
woo woo 군대는 때 되면 알아서들 갈 테니까
우리 이름 팔아먹으면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 XX들
싸그리 다 닥치길

(중략)
빌보드 1위, oh no, 어떻게 생각해?
그 다음은 그래미,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난 미안한데 XX X도 관심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