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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의 비핵화 용어는…CVID 돌아가나? ‘완전한 비핵화’ 살아남나?

중앙일보

입력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는 어려운 목표지만, 우리의 비확산 목표와 아주 잘 맞습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 현지시간 7일 상원 인준 청문회)

신임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가 북한을 "불량 정권(rogue regime)"으로 부르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즉 CVID 원칙을 꺼내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때에 이어 지난해 5월 한ㆍ미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조 바이든 정부가 합의한 비핵화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CD)'인데 윤석열-바이든 정부에선 이를 기존의 CVID로 되돌릴지 주목된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 로이터.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 로이터.

‘검증’ 중시한 尹

윤석열 당선인의 후보 시절 외교ㆍ안보 공약집에는 대북 정책의 첫 번째 과제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담겼다. 이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와 안전을 구현하겠다"고 명시했다. 북한 비핵화 목표로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혼용했다.

문재인 정부와 차이점은 비핵화의 대상을 '한반도'가 아닌 '북한'으로 한정하고, '완전한 비핵화'에서 더 나아가 '검증 가능성', 즉 CVID의 V(verifiable)를 명시했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가장 원하는 제재 완화를 얻으려면 핵 사찰부터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검증에 중요성을 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 당선인의 대미 특사단 성격으로 지난 3일(현지시간)부터 7박 8일 일정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박진 한ㆍ미정책협의대표단장(국민의힘 의원)은 10일(현지시간) 귀국 전 기자들과 만나 골드버그 지명자의 CVID 발언에 대해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볼 때 검증이 안되고 되돌릴 수 있는 비핵화가 과연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검증 필요성 뿐 아니라, CVID의 I(irreversible)가 뜻하는 '불가역성'도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처음 등장한 CVID는 여태껏 가장 널리 통용돼 온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원칙이다. 북한은 "패전국에게나 강요하는 것"(외무성 대변인, 2004년)이라며 반발했고, 실제 그간 북한이 동의한 비핵화 합의도 매번 검증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고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고안해냈다. 이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 성명에서도 반영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ㆍ미 정책협의대표단이 10일(현지시간) 미 하원 군사위의 아담 스미스 위원장과 마이크 로저스 공화당 간사를 면담하는 모습. 한ㆍ미 정책협의대표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ㆍ미 정책협의대표단이 10일(현지시간) 미 하원 군사위의 아담 스미스 위원장과 마이크 로저스 공화당 간사를 면담하는 모습. 한ㆍ미 정책협의대표단. 연합뉴스.

美 대사 "포괄적 비핵화"

골드버그 지명자가 꺼내든 CVID에서 눈에 띄는 점은 C를 주로 통용되는 '완전한(Complete)' 대신 '포괄적(Comprehensive)'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국무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젤리나 포터 부대변인, 현지시간 8일)고 설명했다.

완전과 포괄 사이에 의미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 청문회에서 관련 질문을 한 의원은 C를 '완전한(Complete)'으로 표현했는데 골드버그 지명자는 굳이 이를 '포괄적(Comprehensive)'으로 바꿔 답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유엔 대북 제재 이행 담당관이었던 그가 북한 비핵화 관련 용어를 혼동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은 6자 회담 시절에도 CVID의 C를 '포괄적'으로 바꾼 적이 있다.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완전한 비핵화'보다 유용하다는 판단에서다. 3차 6자 회담 때인 2004년 6월 회담 관련 미국 측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자극적인 표현을 쓸 필요가 없어 '포괄적 비핵화'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 미 정부 고위 당국자도 "북한이 '포괄적 비핵화'를 수용하면 다자적 안전 보장과 상당한 경제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인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나온 9ㆍ19 공동 성명에는 C가 아예 빠지고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가 담겼다.

핵심은 ‘V’의 부활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초기 대북 정책 검토를 거친 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의견을 수용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D)'라는 표현을 택했다.

다만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과 지난 1월 북한을 규탄하는 유엔 회원국 간 공동성명에서는 다시 CVID로 표현했다. 미ㆍ일 사이엔 지난 1월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계기로 이미 CVID가 공식적으로 되살아났다.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용어는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검증이 사실 CVID의 핵심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 운용에서 동맹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한·미가 공식적인 비핵화 원칙을 다시 CVID로 되돌릴 가능성도 농후하다. 앞서 한ㆍ미ㆍ일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1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CVID 원칙을 표명했다.

다만 북한이 CVID라는 표현에 대해 갖는 노골적 반감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성명을 통해 직접 동의한 표현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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