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세탁·탈세·테러자금…IMF "부패할수록 암호화폐 많이 쓴다"

중앙일보

입력

부패한 나라일수록 암호화폐를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에 따른 내용이다. 돈세탁이나 범죄 자금 등에 암호화폐가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미국 등이 주장하는 암호화폐 제도화를 통한 규제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IMF는 지난달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암호화폐, 부패, 자본 통제 : 국가 간 상관관계’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국민의 암호화폐 사용 정도와 국가의 부패 통제 수준, 인플레이션, 자본 개방성, 인터넷망의 안전성 등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독일의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가 지난해 55개국에서 국가별로 최소 2000명, 많게는 1만2000명에게 ‘암호화폐를 소유하거나 사용해봤는지’ 질문한 결과를 활용했다. 다만 IMF는 “표본의 수가 적고 응답자가 각 국가의 전체 인구를 대표하지 않는 초기 단계의 실증 연구이기 때문에 결과를 해석할 때 유의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IMF 연구자들은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가 부패하고 자본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서 더 많이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지난해 9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와 전쟁 발발 뒤 정부의 공식 암호화폐 지갑 계정을 만든 우크라이나 정부의 결정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IMF는 “인플레이션이 심할수록,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송금액이 높을수록, 인터넷망이 불안전한 국가일수록 암호화폐 사용 비중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자국 화폐의 가치가 불안정하고 송금의 수요가 높지만 금융전산망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암호화폐 사용을 선호한단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비트코인 등 주요 암호화폐를 이용한 돈세탁과 탈세, 테러 자금 조달 등의 사례가 늘고 있다”며 “부패하거나 자본 통제가 심한 국가에서 이런 범죄율이 높은 만큼 각국 당국이 적절한 규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이미 디지털 자산의 신원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며 “사이버 범죄를 막기 위해 암호화폐 이용을 금지할 수는 없고 제도권으로 진입시켜서 확실한 감독을 받도록 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이는 최근 미국 금융 정책 담당자들이 밝힌 암호화폐에 대한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4일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암호화폐의 성격은 증권일 가능성이 높다”며 “암호화폐 거래소가 주식이나 선물처럼 투자자 보호 조치를 갖추고 감독 당국의 규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지난 7일 “은행과 금융권이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는 만큼 암호화폐도 제도권 진입이 필요하다”며 “혁신을 뒷받침하는 규제가 없을 경우 투자자들은 각종 사이버 범죄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5일부터 세계 최초로 이른바 ‘코인 실명제’로 불리는 트래블룰(Traver rule·자금이동규칙)을 암호화폐 거래소에 적용했다. 트래블룰은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100만원 이상의 암호화폐를 송금하는 경우 송·수신인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보관하는 제도다.

하지만 각 거래소의 신원 정보 확인 프로그램간 연동이 아직 되지 않아 국내 대표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은 현재 서로 송금이 안 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프로그램 간 연동이 완료되는 오는 25일까지는 송금이 계속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