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값 1년새 36% 급등…기업 ‘탄소부채’ 벌써 30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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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정부의 강력한 탄소배출 규제 정책이 본격화하며 재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규제를 면해주는 무상 할당량은 대폭 줄어들 상황인데, 탄소배출권 가격은 요동치고 있어서다. 당국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해 기업의 부담을 키웠다는 불만도 나온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업의 재무부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업의 재무부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은 1년 새 36% 올랐다. 지난해 4월 t당 1만5400원이었던 KAU21(2021년 배출권) 가격은 올해 초 3만5100원까지 올랐으며 지난 8일엔 t당 2만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탄소배출권은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데 국내 산업 정책뿐 아니라 해외 배출권 가격에도 영향을 받는다.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한때 하락했지만, EU의 경기 둔화 우려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에 따라 다시 오름세로 접어들었다. 강대승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에 끝나고 EU가 기존의 탄소 배출 규제 강도를 유지한다면 EU 탄소 배출권 가격은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지난달 25일부터 시행 중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기업들의 탄소 배출권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기업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각 기업에 제공된 온실가스 무상 할당량도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15년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며 탄소 감축 의무가 있는 기업에 연 단위 배출권을 할당했다. 적용 대상이 되는 600여 기업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할당 범위보다 적은 곳은 감축량만큼을 시장에 판매하고, 할당 범위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곳은 외부에서 배출권을 매입해 주어진 배출 할당량을 맞추고 있다.

탄소배출권 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탄소배출권 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17년까지만 해도 정부는 제도 정착을 위해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배출권 거래제 2기(2018~2020년)·3기(2021~2025년)를 거치며 유상할당 비율은 10%까지 늘게 됐다. 최초에 공짜로 주어졌던 배출권을 일정 부분 돈을 주고 사 오게 된 셈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돼 유상할당 비중이 더 커지면 기업들이 배출권 구매를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이미 주요 제조업체들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부담을 감수하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시가총액 기준 상위 50개 제조기업의 배출부채는 총 2941억원 규모다. 배출부채는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기 위해 쌓아두는 충당금이다. 기업별로는 기아의 배출부채가 119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포스코(843억원), 삼성전자(450억원)의 순이었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기술이 상용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감축 목표로 경영난이 가중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미 에너지 효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인 상황이라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며 “감축 기술 중 하나인 수소환원제철도 2030년대 중반 이후나 돼야 상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경우 2030년까지 온실가스 사업장 배출량을 2017~2019년 3개년 평균 대비 10% 줄이는 게 목표지만 이때까지 온실가스 저감 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연간 생산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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