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 글 실린 로동신문도 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조선통신 리충국 님! 엊저녁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중앙일보 22일자(일부지방 23일) 3면에 실린 님의「서울 인상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감사하여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님의 활짝 웃는 얼굴에서 반세기의 찌푸린 분단의 슬픔이 다 가셔 버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피를 함께 나눈 리충국 님! 꼭 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통일로와 서울에서 님들을 환영하는 인파가 열띤 손을 흔들지 않아『매우 섭섭했다』하셨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4천2백만의 깊은 마음속에 님들을 반기는 참 환영의 불이 충천해 있음을 나는 압니다. 거리에 누가 나가서 손을 흔들라고 하지를 않고 환영연극을 못 보았던 것은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이젠 외식 적이고 형식에 너무 치우친 행사보다는 님과 나의 가슴에서 오가는 한겨레의 말없는 마음의 나눔이 더 귀합니다.
내가 충심으로 사랑하는 리충국 님 ! 님께서는 우리 잠실 경기장을 보시고『평양 5·1경기장의 절반만 하다』고 하셨더군요. 혹시 실망하시게 해 드렸거든 너그럽게 받아 넘겨주세요. 우리의 경기장 또는 그 밖의 문화시설들이 완벽하다고 나는 믿지 않습니다.
잠실벌에 세계가 모였을 때 그런대로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되지 않습니까.
『서로의 차이를 해소하려면 될 수 있는 한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나는 참마음으로 동감하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젠 생각하고 끝내서는 안될 시점에 왔습니다. 이 민족이 참 통일로 하루라도 빨리 뛰어 나가려면 늙은이와 처녀, 노인 정치가들과 젊은 세대들 사이의 대화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성 주석이 우리 쪽의 총리와 일행을 그렇게 정중하고 다정하게 영접하시고 담소하는 모습을 우리 쪽의 젊은이들이 보았습니다. 이젠 북녘에서 온 우리의 자랑스런 청소년 남녀들이 남쪽에 살고 있는 기성세대와도 마음을 열고 인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나는 꼭 믿고 있습니다. 오늘 두 번째 통일축구 경기가 양쪽 팀의 청소년선수들이 땀을 같이 흘리면서 뛰게 하고 그러는 동안에 몸도 마음도 혼도 혼연일체가 되어 전반 45분에 45년 한을 씻어 던지고 후반 45분 동안에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선수들과 관중들이 휴전선, 38선을 녹이고 벽을 넘는 신비스런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 가운데 언론의 부 자유와 통제, 그리고 편견이었습니다. 님께서 평양으로 돌아가신 다음 그곳에서 다음 번에 남쪽 기자들이 취재를 할 때 부탁입니다. 그들의 글을 하나라도 로동신문에 그냥 실어 주시면 어떨까요. 우리 중앙일보가 님의 인상기를 그대로 보도했듯이 말입니다. 안녕을 빕니다.
이윤구<한국청소년 연구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