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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人들]당신의 이야기를 담아 달립니다… 움직이는 책방 북다마스

중앙일보

입력

눈치 보지 말고 오래 머물러도 됩니다. 편하게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세요

완연한 봄날, 제주도 서귀포시 화순 해변의 어느 카페. 커피 향 가득한 창문 너머 하얀색 미니밴이 자리한다. 떡하니 카페 앞마당을 차지하더니 트렁크를 열고 주섬주섬 책을 늘어놓는다. 곧이어 입간판까지 세우고 작은 책방으로 변신했다. 주인장 김예진(29) 씨는 손님이 와도 멀찌감치 떨어져 눈인사만 건넬 뿐이다. 이 수상한 움직임의 정체는 움직이는 책방 ‘북다마스’다.

북다마스는 다마스 자동차로 이동하며 책을 판매하는 움직이는 책방이다. 지난 16일 김예진 대표가 제주 서귀포시 화순 해변에 위치한 카페 '화순별곡'앞에 서점을 차렸다. 장진영 기자

북다마스는 다마스 자동차로 이동하며 책을 판매하는 움직이는 책방이다. 지난 16일 김예진 대표가 제주 서귀포시 화순 해변에 위치한 카페 '화순별곡'앞에 서점을 차렸다. 장진영 기자

지난 2020년 시작된 북다마스는 다마스 자동차로 이동하며 책을 판매하는 움직이는 책방이다. 매대에는 240여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있다. 대부분 독립출판물이다.

꿈이 없던 소녀의 꿈

김 대표는 스스로를 ‘꿈이 없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봐도 항상 장래희망이 다르게 적혀있었죠” 그런데 묘하게 ‘책’만큼은 마음이 끌렸다. 김 대표는 그 이유를 “모호했던 마음이 문장이라는 형식으로 발현되고, 타인의 세계를 구구절절한 문장과 서사로 간접경험 할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책을 통해 전해지는 세계. 꿈이 확실히 그려졌다. 어릴 때 동네에 오던 이동식 도서관을 떠올렸다. 차에 책을 가득 싣고 전국을 낭만적으로 누벼보고자 했다. 책방 자금 마련을 위해 2년간 직장생활도 열심히 했다.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 여유가 되면”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젊음을 무기로 삼았다.

북다마스 트렁크와 간이 매대를 합쳐 약 240여권의 책이 빼곡하게 자리한다. 장진영 기자

북다마스 트렁크와 간이 매대를 합쳐 약 240여권의 책이 빼곡하게 자리한다. 장진영 기자

나를 찾는 곳이 없다면 내가 찾아간다

야심 차게 출점을 선언했건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북페스티벌이나 대학 축제 등에서 서점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움직이자” 지역마다 출점할 카페를 찾아 루트를 짰다. ‘수동 운전’에 ‘파워핸들’도 없는 다마스를 끌고 서울-안성-대전-광주-전주-화순-남해-제주-부산-대구를 35일간 돌았다. 대부분 카페와 연계해 좌판을 펼쳤다. “북다마스는 가로 4m, 세로 1.5m의 공간만 내어준다면 충분합니다” 전국 투어 이후 제주에 정착했다. 초반에는 김 대표가 “장사를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처지였지만 지금은 “우리 가게 앞마당으로 와주세요”라는 요청이 많은 편이다.

전국투어 출점 당시 북다마스 모습. 위에서부터 바닷가, 수영장옆, 숲 속, 해안가에서도 책방을 열었다. 사진 김예진

전국투어 출점 당시 북다마스 모습. 위에서부터 바닷가, 수영장옆, 숲 속, 해안가에서도 책방을 열었다. 사진 김예진

독립출판물이라는 세계

북다마스는 대부분 독립출판물만 판매한다. 독립출판물이란 1인 또는 1팀의 제작자가 기획부터 제작, 디자인, 유통까지 모두 담당하며 만들어내는 책을 뜻한다. 김 대표는 “꼭 작가가 아니어도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기꺼이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게 멋져 보였다”라고 독립출판물에 매료된 계기를 설명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책이기도 한 독립출판물은 세세한 취향에 집중한다. 북다마스의 매대에는 김 대표가 직접 쓴 추천사가 곳곳에 놓여있다. "우리가 스쳐 지나면서 의식하지 못했던 곳곳에서의 대화를 살펴보세요" 라던지 "사진집이라기엔 소박하고, 여행 책이라기엔 정보가 없지만, 삶의 기록을 진솔하게 담았습니다"라는 식이다.

북다마스에서는 주로 독립출판물을 다룬다. 장진영 기자

북다마스에서는 주로 독립출판물을 다룬다. 장진영 기자

김 대표가 직접 작성해 판매하는 책에 붙여놓은 추천사. 장진영 기자

김 대표가 직접 작성해 판매하는 책에 붙여놓은 추천사. 장진영 기자

하루에 얼마나 팔려요?

북다마스를 찾는, 또는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하루에 한 권 팔린 날도 있었어요” 그마저도 카페 주인이 구매한 것이었다. 김 대표는 솔직하게 하루에 열 권 팔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수입에 보탠다고 했다. 위의 우문(愚問)에 그는 “이걸 왜 시작했을까… 망하더라도 운전은 잘하게 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며 “내가 하는 일은 돈으로는 낮은 가치가 매겨지는 것들을 그럼에도 가치 있게 계속 말하는 것”이라 현답(賢答)했다.

김 대표는 북다마스 운영 경험을 모아 독립출판으로 '이토록 작은 세계로도'를 출간했다. 장진영 기자

김 대표는 북다마스 운영 경험을 모아 독립출판으로 '이토록 작은 세계로도'를 출간했다. 장진영 기자

김 대표는 북다마스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쉽게 놓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김 대표는 북다마스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쉽게 놓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글은 마음을 번역하는 일

“북다마스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걸 알고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고마워서 쉽게 놓지는 못할 거 같아요” 그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책을 건네주는 모습을 보니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만 같았다. 현재 여러 수강생과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북워크샵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글은 마음을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읽는다는 건 세상을 구체적으로 보고 시야를 넓혀가는 일이죠. 잘 모르겠는 것을 정확하게 보이게 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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