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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정의가 뭐예요?” 학생들 독서 안 해 문해력 70점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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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호 06면

문해력 떨어진 초·중·고생들

# 경기도 소재 2년차 중학교 교사 이단비(가명)씨

“얼마 전에 시험 감독을 할 때 ‘요소가 뭐예요?’ ‘정의(定義)가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아이들이 시험 문제에 나오는 한국어 의미를 몰라서 문제를 못 풀고 있었던 거죠. 다른 교과목 선생님은 ‘과도기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셨대요.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떨어지면서 그중 하나인 문해력도 낮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의·개념 등 교사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단어가 학생들에게는 낯선 단어일 수 있다는 걸 매일 깨닫고 있어요.”

# 대구 소재 19년차 초등학교 교사 김정호(가명)씨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정말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몇 년 전 4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문학을 지금 6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이전보다 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알만한 단어도 모르고 있어 수업 시간에 단어 의미를 설명하느라 진도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또 글을 읽는 것도 싫어하고, 읽더라도 이해를 못합니다. 온라인에서 줄임말만 접하다보니 ‘당근이지’, ‘1도 없어’는 알아도 ‘당연하지’, ‘하나도 없어’라는 말은 몰라요. 신조어는 알아도 유래된 단어가 뭔지, 그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는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교실에서 체감하는 학생들의 문해력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글자를 읽을 수 있어도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면서다. 이단비, 김정호 교사를 비롯해 중앙SUNDAY가 취재한 10명의 초중고교 교사들은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해력은 기초적인 읽기 및 쓰기 이상으로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단순히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문맹과는 다른 개념이다. 유네스코는 문해력을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을 이해·해석·창작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했다. 모든 학습과 사고의 기반이 되는 능력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을 위해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개념이다.

OECD 읽기 학업성취도 평가 떨어져

실제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력은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읽기 영역 학업 성취도는 낮아졌다. PISA는 세계 각국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수학·과학 영역에서 학업 성취 수준을 평가한다. 2009년 PISA에서 국내 학생들의 읽기 영역 순위는 2~4위였으나 2018년에는 6~11위로 하락했다. 읽기 평균 점수는 2009년 539점에서 2018년 514점으로 25점 하락했다. 주목할 점은 읽기 영역에서 성취 수준이 낮은 하위 학생들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최하위 수준에 해당하는 1수준과 1수준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은 2009년 5.8%에서 점차 증가해 2018년 15.1%에 달했다.

읽기 영역 문항별 정답률은 거의 모든 문항에서 낮아졌다. 특히 문장이나 단락으로 구성된 연속 문항과, 표·그래프 등 비연속 문항이 합쳐진 혼합 문항의 정답률은 2009년 64.21%에서 2018년 36.99%으로 27.22%포인트 하락했다. 문장이나 짧은 단락의 의미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축자적 의미 표상’의 정답률도 2009년 61.54%에서 2018년 46.54%로 15%포인트 낮아졌다. 이에 대해 평가원은 “우리나라 학생들은 기본적인 읽기 과정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PISA 문항에서 다양한 매체에 대한 복합적이고 실제적인 읽기 텍스트가 제시되는 만큼, 우리나라 학생들의 기초적 읽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현직 교사들이 평가하는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 점수도 낮은 편이다. 지난해 4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9%가 “학생들의 문해력은 100점 만점 기준 70점대”라고 답했다. 60점대라고 답한 교사도 35.1%나 됐다. 그 보다도 낮은 59점 미만이라고 답한 교사도 9.4%였다. 교사들이 꼽은 문해력 저하의 주된 원인은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져서’(73%)와 ‘독서를 소홀히 해서’(54.3%)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자 교육, 어휘 교육, 일기 쓰기 금지 등에 관한 얘기도 언급됐다.

읽고 말하고 쓰기 흥미 느끼게 해야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영상이다. 이는 학생들이 책을 찾지 않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대구 소재 초등학교의 20년차 교사 이지수(가명)씨는 “독서가 천연 재료라면, 유튜브는 조미료”라며 “이미 유아 때부터 유튜브라는 조미료 맛을 본 아이들에게 천연의 맛이 느껴질리 없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읽지 않고 영상만 보게 되면서 단어의 문맥상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고 어휘력이 많이 부족해졌다”고 분석했다. 서울 소재 7년차 고등학교 교사 박지성(가명)씨도 “화면 전환이 빠르고, 대화 호흡이 짧은 영상에 익숙하다보니 줄글로 된 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고, 요약해주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하며 가정 내 교육 환경에 따라 학습격차가 심화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 학생 중 국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2019년 4.1%에서 6.4%로 증가한 반면, 보통 학력 이상 학생은 2019년 82.9%에서 2020년 75.4%로 감소했다.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하지만 독서 습관이 없는 학생들은 책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를 못 느낀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우선 읽고, 말하고, 쓰는 데에 흥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 27년차 중학교 교사 조경선(가명)씨가 올해 ‘시 동아리’를 만든 이유다. 조씨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글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동아리를 만들었다”며 “지금은 짧은 시를 주로 읽고 있지만, 익숙해지면 산문시도 읽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장으로 의견을 쓰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11년차 초등학교 교사 박도훈(가명)씨는 “일기 쓰기 등 개인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학교·지역사회·국가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김성우 리터러시 연구자는 “문해력의 지표로서 중요한 것은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점수보다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좋은 책방이 있는지, 공공 도서관이 잘 되어 있는지 등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 여부”라며 “문해력 저하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서 사실·의견 식별하는 디지털 문해력도 낮아

코로나19는 교육계의 디지털화를 한층 앞당겼다. 지난 2년간 아이들은 태블릿PC, 노트북 등을 활용하며 디지털 기기 사용에 보다 능숙해졌다. 이런 변화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최근 전국 각 시·도 교육청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개인 태블릿PC나 학습용 노트북을 지급했다. 디지털 기기 활용이 불가피하다면, 교육도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현재 국내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OECD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디지털 문해력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만 15세 학생 중 ‘인터넷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할 수 있는 학생’은 불과 25.6%에 그쳤다. OECD 평균인 47.7%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온라인 정보의 주관성과 편향성에 대한 교육을 받은 학생’ 역시 49%로, OECD 평균(54%)보다 낮았다. 이는 기기 사용에 능숙한 것과 온라인 정보를 잘 선별하고, 이해하는 것은 별개임을 의미한다.

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학습 흐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디지털 문해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온라인의 무수히 많은 정보 중 어떤 정보를 습득할 것인지 ‘평가’하고, 특정 견해에 대해 내 의견은 어떠한가를 고민하는 ‘성찰’ 과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과제를 수행했을 때 구체적으로 잘한 점과 보완할 점에 대한 피드백이 오가는 과정에서 메타인지와 자기효능감이 높아지면 디지털 문해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며 “지식을 ‘활용’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교육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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