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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만달러 공세 '골리앗' 이겼다…래퍼출신 노동자 '아마존 반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마존 해직노동자이자 아마존노동조합(ALU) 위원장인 크리스티안 스몰스(가운데)가 1일 노조 찬반 투표에서 승리한 후 뉴욕 브루클린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 사무실 앞에서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마존 해직노동자이자 아마존노동조합(ALU) 위원장인 크리스티안 스몰스(가운데)가 1일 노조 찬반 투표에서 승리한 후 뉴욕 브루클린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 사무실 앞에서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솔직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이런 걸 해본 적도 없고 이 일이 어떤 파장을 부를지도 몰랐거든요.”

지난 1일(현지시간) 아마존 첫 노동조합 출범을 주도한 크리스티안 스몰스(34)의 말이다. 스몰스는 뉴욕타임스(NYT)에 3일 이같은 소감을 전하면서 “내가 아는 모든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냈고 막상 취재를 오니 확실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긴장됐다”고 덧붙였다. 스몰스가 만든 노동조합은 아마존 미국 뉴욕 최대 규모인 스태튼섬 물류센터(JFK8) 소속이다. 지난달 진행된 노조 설립 투표가 전체 직원 8325명 중 58%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찬성 2654표, 반대 2131표로 가결됐다.

전·현직 근로자로 구성된 아마존노조연맹(ALU)이 이를 주도했고, 스몰스는 ALU의 위원장이다. 그의 노조 설립기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을 상대로 벌인 ‘다윗과 골리앗’의 투쟁기다. NYT가 보도한 투쟁기 전말을 전한다.

동료 확진에 대처 미흡…파업한 날 해고  

스몰스는 평범한 직원이었다. 고등학교 땐 NBA 농구선수를 꿈꿨지만, 교통사고로 운동을 그만둔 후 래퍼로 활동했다. 이후 결혼해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월마트와 페덱스 등에서 계산원 등으로 일했다. 아마존엔 2015년 온라인 주문이 들어온 물건을 담는 피커로 입사했다.

2020년 5월 1일 아마존에서 해고된 후 시위에 나선 크리스티안 스몰스.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5월 1일 아마존에서 해고된 후 시위에 나선 크리스티안 스몰스. 로이터=연합뉴스

그가 달라진 계기는 지난 2020년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었다. 물류센터 구내식당에선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300~400명이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식사했다. 그해 2월 말 눈이 충혈된 채 힘겹게 일하는 동료를 보고 스몰스는 집에 가서 쉬라고 했지만, 동료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고서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쉴 수 없었다. 결국 동료는 확진됐지만, 회사는 스몰스를 비롯한 밀접접촉자에게 자가격리 14일 조치만 한 채 계속 운영했다.

스몰스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인사팀에 문제를 제기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내 물류창고의 집단감염 위험성을 알렸고, 동료들과는 화장실에서 비밀 사인을 주고받거나 그룹 채팅으로 상의하며 3월 30일 파업을 이끌었다. 그날 스몰스는 자가격리 위반을 이유로 해고됐다. 그해 5월 스몰스는 노동단체 필수노동자회의(TCOEW)를 조직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절 파업과 시위 등을 주도했다.

12만 달러 vs 430만 달러…음식 나누고 틱톡 홍보

아마존 노조 출범에 본격 착수한 건 이듬해 4월 ALU를 설립하면서다. JFK8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작은 텐트를 설치하고 서명 운동에 나섰다.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 절차상 전체 직원의 3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노조 설립 투표를 진행할 수 있어서다. 의자와 책상 2개씩뿐이던 텐트에선 퇴근하는 JFK8 직원들에게 음식을 내주고 틱톡 영상을 제작했다. ALU의 자금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12만 달러(약 1억4600만원)가 전부였다.

크리스티안 스몰스(맨 왼쪽)와 아마존 노조 설립을 축하하는 동료들. AFP=연합뉴스

크리스티안 스몰스(맨 왼쪽)와 아마존 노조 설립을 축하하는 동료들. AFP=연합뉴스

스몰스는 지난해 WSJ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설립된 노조의 조직 과정을 들여다봤지만, 시대가 달라졌다”며 “우리는 아마존처럼 싸워야 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활용하되 그것이 돈과 힘일 필요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독립적인 노동자 풀뿌리 단체가 6개월 만에 2000명 넘는 서명을 받은 것 자체만으로도 승리였다”며 “작은 텐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군대와 같은 엄연한 조직이 됐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은 지난해 반노조 컨설팅에 430만 달러 넘게 썼다고 NYT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밝혔다. 스몰스가 노조 설립에 나서자 회사는 임금 인상과 함께 근로조건 개선을 약속했고, 투표를 앞두고는 하루에 회의만 20번 넘게 하고 직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스몰스는 아마존 직원이 아니고 오히려 직원과의 직접 교섭을 방해한다는 이유다. 지난 2월엔 센터 휴게실로 점심을 가져온 스몰스를 무단침입으로 신고해 다른 직원 2명과 체포된 모습이 담긴 틱톡 영상은 조회 수가 수십만 회를 기록했다.

지난 1일 브루클린의 한 사무실에서 아마존의 대표 변호사와 나란히 앉아 투표 집계 결과를 지켜보던 스몰스는 승리가 확정되자 환호하며 곁에 있던 동료들을 껴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 시간 이 사무실에서 몇 ㎞ 떨어진 JKF8에서도 노동자들이 상자 포장 작업을 하면서도 힐끗힐끗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어디선가 이런 외침이 나왔다.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이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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