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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파티가 ‘홍대 명절’ 됐다, 15년째 연 인디축제 ‘경록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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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15년째 연 생일파티 겸 인디음악축제 ‘경록절’로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15년째 연 생일파티 겸 인디음악축제 ‘경록절’로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5년째 자신의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또 꾸준하게 열었다. 그랬더니 공정성을 자타가 공인하는 대중음악상까지 받았다. 락밴드 ‘크라잉넛’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인 한경록(45)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생일파티 겸 인디음악 축제 ‘경록절’을 개최한 공로로 지난달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특별상을 받았다. “코로나 시대 한국 인디신과 라이브클럽신을 조명하고, 2년 연속 온라인으로 연 경록절 축제를 통해 음악인들을 서로 연결한” 공로다. 27년 차 밴드 ‘크라잉넛’이 받지 못한 ‘한대음’을 한경록 개인이 받았다. 최근 서울 합정동 제비다방에서 만난 그는 “노는 것도 진화하더라. 잘 놀면 상도 받는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경록절’은 한경록이 생일인 2월 11일 서울 홍대 앞 술집에서 연 자축파티에 인근에 있던 뮤지션들이 찾아와 공연하고 놀던 데서 출발했다. 그게 2005년 일이다. 규모가 제법 커진 2007년, 누군가 농담처럼 ‘경록절’이라고 이름 붙인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15년째 ‘경록절’을 핑계 삼아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는 밴드와 예술인, 일반 관객이 몰려들다 보니 어느새 ‘홍대 명절’이 됐다.

밴드도 무료 출연, 관람료·술·음료도 무료

공연하는 밴드도 무료 출연, 입장하는 관객도 무료 관람, 술과 음료도 무료 제공이다. 처음엔 한경록이 술값으로만 수백만 원씩 사비를 털어 진행했고, 명성을 얻으면서 주류회사가 주류를 협찬하는 정도로 커졌다. 2015~2020년에는 매년 800명 규모의 홍대 앞 최대 공연장 무브홀(코로나19로 폐업)에서 ‘경록절’을 열었다. 한경록은 “연말공연 끝내고 비수기인 1~2월에 다들 모여 얼굴 보는 ‘인디 동창회’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와 올해는 ‘경록절’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2월 9~11일 열린 올해 ‘온라인 경록절’에는 최백호, 한영애, 부활, 마미손, 이날치, 코카앤버터, 이승윤 등 다양한 세대와 장르의 음악인이 함께했다. 최백호는 한경록과 전화 통화한 지 1분도 안 돼 “내 그거 할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라고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날치는 “외국 팬들에게도 홍보하겠다”며 경록절 관련 자료를 받아갔다. 코카앤버터는 e메일로, 이승윤은 소셜미디어 직접 전달 메시지(DM)로 한경록이 직접 섭외했다. 40여개 인디밴드도 무대에 세웠다.

한경록은 “인기 있는 팀들은 (코로나19에도) 타격을 덜 받지만, 공연 없는 팀들은 우울해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온라인 무대라도 마련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일부러 많은 팀을 소개하고 싶어서 3일간 축제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최백호는 한경록에게 “안 그래도 후배님들한테 뭔가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나 찾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다.

경비 마련 위해 온라인 펀딩 1200만원 모아

온라인으로 진행된 올해 ‘경록절’에는 최백호(오른쪽), 이승윤, 마미손 등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음악인들이 출연했다. [사진 크라잉넛 유튜브]

온라인으로 진행된 올해 ‘경록절’에는 최백호(오른쪽), 이승윤, 마미손 등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음악인들이 출연했다. [사진 크라잉넛 유튜브]

한경록은 “접근성을 높여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장르 폭을 넓혔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다가 다른 가수도 보게 되는 확장성, 인디음악은 물론 다양한 장르음악 박람회 같은 느낌이 경록절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명절에 전 부치면서 봤다’ ‘애 키우느라 경록절 직접 가진 못하는데 온라인으로 봐서 좋다’는 사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일부 지원을 받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경록절은 온라인 펀딩으로만 진행했다. 252명이 참여해 최소 경비 1200만원을 모았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한 사람이 예닐곱 명 역할을 하며 한 달간 준비했다. 한경록은 “온라인 공연이 돈이 덜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하려니 온라인 촬영·편집·사운드 등에만 10명 넘는 인력이 필요해 돈이 더 들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연이 줄면서 2020년 하반기부터 격주로 목요일마다 두 시간씩 해온 ‘크라잉넛 유튜브 라이브’도 ‘온라인 경록절’을 여는 데 도움이 됐다. 한경록은 “두 시간씩 공연하는데 박수가 없으니, 허공에 스윙하는 느낌이라 처음엔 힘들었다”며 “그것도 1년쯤 하니 적응이 됐고, 온라인으로 실시간 댓글을 보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해져 경록절도 편안하게 했다”고 말했다.

한경록은 온라인 행사라도 강행한 이유에 대해 “중세에 흑사병이 돌고 난 뒤 예술이 부흥해 르네상스가 찾아왔듯, 2022년에도 ‘역병 속에서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온라인 경록절은 영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0~30년 뒤 음악인들이 그걸 보고 ‘아, 선배들은 어떤 역경이 있어도 제대로 놀았구나’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크라잉넛은 오는 16일 “거의 3년만”의 단독 콘서트를 한다. 한경록은 “대면 공연이 너무 오랜만이라 설렌다”며 “코로나19가 끝나면 무브홀이 없어진 자리에 새로 생기는 공연장에서 오프라인 경록절을 열고, 그 이후 경록절이 더 커지면 (생일인 2월은 야외가 추우니) 천정이 있는 고척돔으로 BTS를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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