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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품격 없는 약자 멸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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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호 31면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요즘 들어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사전 읽는 취미를 붙였다. 단어 하나를 찾아 뜻을 새기고, 이어지는 단어를 찾아 떠돌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상용자해』가 여행의 길잡이다.

이 책은 인문 공부를 하는 모든 이의 책상에 놓일 만한 공구서(工具書)다. 나라의 문명 수준이 높을수록 공구서도 발달한다. 자기 언어로 된 독자적 백과사전이 없는 나라는 문명국일 수 없다. 『지봉유설』 『임원경제지』 같은 백과사전이 쏟아졌던 조선 후기처럼, 결국 이런 책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정신이 독립하고 문화가 성숙해진다.

공당 대표의 장애인 비난 발언
야비함과 잔인함 드러낸 처사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 품격
남 주저앉히는 일엔 인간이 없다

『상용자해』는 일본 정부에서 고시한 ‘상용한자’에 왈(曰)을 추가한 2137자의 글자에 대한 해설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한자 사전은 아니다. 고고학 혁명 이후, 현대 갑골학과 한자학의 성과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알면 영어가 잘 이해되듯, 한자의 원형인 갑골글자와 금문을 알면 한자의 뜻을 더 깊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한자가 처음 생겨날 때의 뜻이 담겨 있다.

선데이 칼럼 4/2

선데이 칼럼 4/2

시라카와에 따르면, 언어는 그 근본에서 모두 주술적 성격을 띤다. 말[言]은 그릇[口]에 형벌 도구인 여(余, 바늘)를 꽂아서 신에게 맹세하는 일이다. 이때 口는 ‘입’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축문을 담은 그릇’이다. 갑골이나 청동기에는 ‘ㅂ’ 닮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모든 말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어서, 발화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신의 벌이 내리므로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신은 언어에 깃든 뜻을 살펴서 되새길 줄 아는 사람에겐 지혜를 주지만,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자한테는 재앙으로 갚는다.

공자는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민첩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말의 힘을 거스를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유가 소피스트의 말 잘하는 법(수사학)에서 시작했다면, 동양 사상은 공자와 노자의 어눌함에서 출발했다. 공자는 항상 꾸민 말[巧言]이나 헛된 말[佞言]보다 더듬는 말[訥言]을 칭찬했다.

오늘 새벽에 사전을 찾아 읽은 말은 품격(品格)이었다.

품(品)은 축문 그릇 셋을 나란히 놓은 모양이다. 고대 중국에서 셋은 ‘많다’의 의미다. 품은 그릇을 늘어놓고 한 번에 많은 것을 비는 일이다. ‘여럿, 물건, 물품 등’의 뜻이 여기서 나왔다. 그릇 각각에는 신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담겨 있다. 물건을 물건답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됨됨이’도 그 안에 포함된다.

격(格)은 각(各)에 목(木)이 붙은 글자다. 각(各)은 축문 그릇을 바치고 기도하는 데 응해서 신이 그 위로 내리는 모양이다. ‘이르다’란 뜻이다. 격을 얻은 사람은 언제나 신의 뜻을 물어 행하기에 이 말엔 ‘바로잡다’란 의미도 있다. 격언(格言)은 신의 뜻에 부합하는지 살피도록 하는 좋은 말을 뜻한다. 또한 신의 뜻을 행할 땐 저항하는 흐름도 생기게 마련이므로, 격에는 ‘얽히다’, ‘다투다’의 뜻도 있다.

품격이란 기도에 응하려고 내려온 신을 알처럼 내면에 품어 됨됨이를 얻는 일, 즉 거룩함을 갖추는 일이다. 화이트헤드를 좇아서 말하면, “정신의 궁극적 도덕성”이다. 새삼스레 이 말을 찾아 읽은 까닭은 타자를 향한 경멸과 조롱, 혐오와 증오의 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따져보고 싶어서였다.

공당 대표가 비통한 삶을 사는 장애인을 향해 공감 대신 비난을 퍼붓는 세태가 암담했다. 서울 교통공사 직원이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장애인 시위대 약점 잡아 소셜미디어에 퍼뜨리기’라는 게 끔찍했다. 야비함이 하늘까지 치솟았고, 잔인함은 땅끝까지 치달았다. 그러나 약자의 멸시는 언제나 공인의 가장 큰 적이고, 연민의 결여는 모자란 인격의 선연한 증거이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의무에 대하여』에서 이익과 미덕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까를 준엄하게 물었다. “선한 사람이라는 칭호와 명성을 포기하고 얻어야 할 만한 이익이 있을까?”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 설령 존재하더라도 인간으로 차마 못 할 짓이다. 키케로는 곧이어 말했다. “사람이 야수로 변하는 일과 겉모습만 남은 채 야수 같은 잔인함과 야비함을 품고 행동하는 일이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미덕을 버리고 이익을 좇는 일은 인두겁을 쓴 야수로 가는 길이나 마찬가지다.

인격은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나날이 노력하고 자신과 싸워서 얻어야 하는 덕목이다. 동물적, 이기적 인간[己]이 뜻을 정성스레 하고 자신을 다듬는 과정[修己]을 통해 저열한 욕망을 이기고[克己] 함께 사는 법[禮]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인간답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품격은 늘 신의 뜻을 물어 자신을 바로잡고, 그 뜻에 거스르는 바를 무찌르는 사람한테만 존재한다.

성인(聖人)은 인간이 이루어야 할 궁극의 인간형이자 이상적 인격이다. 성(聖)은 축문을 읊으면서[口] 발꿈치를 높이 들고[壬] 신의 목소리를 듣는[耳] 일이다. 성인은 사람다움[仁]을 완전히 체득해서 무엇을 하든지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루려 할 때 남을 이루게 한다.” 자신이 서려고 남을 주저앉히는 일에는 인간이 없다. 사전을 뒤적이며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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