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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헌기의 인정불가

청년·여성 할당 공천은 능력주의 보완책

중앙일보

입력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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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6월 지방선거 청년·여성 공천 지역구 선정을 비판한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의 칼럼에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이 반박 글을 보내왔습니다. 청년·여성 공천 할당에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선거에서 능력주의만 내세우는 건 올바르지 못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뒤늦게 받아든 청구서들을 처리하고 있다. 주로 청년층이 보낸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청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고전했다. 2030세대는 한때 민주당의 공고한 지지층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돌아서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변화한 청년들의 정서와 삶의 양태를 잘 몰랐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들을 윤리적으로 훈계하거나 평가하려고 했다. 몇 년에 걸쳐 누적된 청년들의 불만을 국민의힘과 이준석 대표가 파고들었다.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서 민주당 입장에선 청년들에게 갚아야할 빚이 적힌 청구서가 쌓이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오른쪽 위)은 "쇄신과 변화에 발 맞춰 여성과 청년 공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 14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오른쪽 위)은 "쇄신과 변화에 발 맞춰 여성과 청년 공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청년 할당은 청구서 해결 과정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년 공천 30%를 천명한 것도 그간 쌓인 청구서를 줄여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진작부터 청년들이 정당 안에서 활동하고 훈련받아 성장할 수 있게 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내부 인재를 발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애초에 청년 할당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청년을 전면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청년 할당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이나 이견은 있을 수 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할당제’는 그다지 환영받는 모델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시험을 통한 선발 같은 능력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울러 여성·청년 등 특정 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그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해결 능력과 대안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물론 획일화된 ‘시험 선발’로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결국 좋은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은 할당제와 능력주의 사이에서 택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급적 유권자라는 모집단 전체의 의견을 잘 반영할 수 있는 표본이 추출될 수 있게 하고, 그 안에서 능력주의와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거일 것이다.

광주 반기업·반시장 지적은 왜곡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동식 위원장의 주장은 황당하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광주에서 여성과 청년 선거구를 지정한 것이 특정 정치인이 사사로이 공천을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억측을 한다. 만약 사천을 하고 싶다면 할당제 등의 제한이 없는 게 더 편할 텐데 굳이 왜 칸막이를 치겠는가?

어차피 현역 국회의원 등이 자기 마음대로 할 거라면 청년 선거구를 지정하지 않아도 사천이 될 것이다. 남성·노인 등이 인재풀에 들어가면 친소 관계에 따라 사천할 수 있는 폭은 더 넓어진다. 청년 선거구 지정은 사천과는 상관이 없다.

주 위원장은 광주에서 운동권에 연계된 기득권 세력이 카르텔을 형성해 광주와 호남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한다. 최근까지 광주에서 4선을 지낸 박주선 전 의원이나 김경진 전 의원, 현재는 국민의당 비례대표인 권은희 의원 등은 운동권이 아닌 검경 출신 정치인이다. 주 위원장의 말대로 광주에 운동권 카르텔이 그토록 공고하다면 이들이 어떻게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청년 취업 도운 광주형 일자리 

아울러 지방 인구 유출 문제는 광주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광주는 대한민국 1호 상생형 지역일자리인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일하는 사람 중 80% 이상이 2030세대다. 광주가 반기업·반시장 정서가 지배하는 도시였다면 1996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이후 23년 만에 국내에 지어진 완성차 공장이 어떻게 광주에 들어섰겠는가?

더불어민주당의 청년 공천에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려면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주동식 위원장의 주장은 본인이 오래도록 해온 ‘이야기’ 속에 그저 청년 공천을 무리하게 우겨넣은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