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도 유해 폐기물 처리에 곤란 겪는 개도국 가운데 하나"

중앙일보

입력

케냐 나이로비의 한 공장에서 플라스틱 등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분류하고 분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케냐 나이로비의 한 공장에서 플라스틱 등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분류하고 분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해 폐기물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개발도상국에서는 환경 오염 피해가 심각하다. 여기에 선진국에서 수입되는 폐기물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한반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북한이 폐기물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폐기물 혼잡 국가' 가운데 하나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한국도 폐기물을 수입하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스페인 물리학·복합시스템 학제(學際)연구소 소속 연구팀은 29일(현지 시각)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한 등 28개 국가는 환경 성과 지수가 낮고, 폐기물 혼잡도가 높아 폐기물의 부적절한 취급과 처리로 인해 시민들의 건강 피해 발생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연간 70억~100억 톤이고, 이 중에 3억~5억 톤은 폭발성·가연성·부식성·독성과 생물학적 위험이 있는 유해 폐기물로 분류된다"며 "유해 폐기물의 10%는 W4를 통해 국제적으로 거래된다"고 지적했다.
W4는 인터넷(WWW)에 빗대어 이 연구팀이 만든 용어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전 세계 폐기물 거래망(World Wide Waste Web, WWWW)을 의미한다.

'WWWW(W4)'는 유해 폐기물 수출입 통로

지난해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 러시가 전자 폐기물로 만든 조각상. 미국 러시모어 산의 조작을 본따 G7 정상들이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 러시가 전자 폐기물로 만든 조각상. 미국 러시모어 산의 조작을 본따 G7 정상들이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구팀은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처리에 관한 바젤 협약'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활용, 유해 폐기물의 합법적인 수출입 경로와 양을 추적했다. 불법적인 폐기물 거래는 제외됐다.

연구팀은 폐기물을 크게 7개 유형(180개 범주)으로 구분하고, 2001~2019년 (2010년은 제외)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각국에서 수입한 폐기물 가운데 처리가 안 되고 쌓여있는 있는 양을 월 단위로 분석해 각국의 폐기물 처리 능력, 즉 수용 능력(carrying capacity)이 어느 정도인지 분석했다.
또, 해마다 수입하는 양을 고려해 연중 어느 시기에 '혼잡' 상황에 도달하는지, 연중 혼잡을 겪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했다. 과거에 수입한 폐기물이 얼마나 많은지도 평가에 반영했다.
폐기물로 인한 혼잡 상황은 다른 나라에서 너무 많은 폐기물을 수입했거나, 국가 내에서 너무 많은 폐기물이 생산돼 자체 인프라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에 나타난다.

연구팀은 각국의 폐기물 처리 능력을 '환경 성과 지수(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EPI)'로 평가했다. EPI는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환경 성적'이다.
EPI 수치가 높으면 해당 국가가 폐기물을 잘 관리할 것이고, EPI가 낮은 국가는 폐기물이 빠르게 적체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연구팀은 이런 자료를 활용, 국가별 '폐기물 혼잡의 잠재적인 환경 영향(potential environmental impact of waste congestion, PEIWC)'을 계산했고, 다시 '폐기물의 부적절한 취급 및 처리 위험이 높은 (high risk of improper handling and disposal of wastes, HRIHDW)' 국가를 골라냈다.

연구팀은 위험이 높은 57개 국가를 확인했는데, 아프리카 29개국, 아시아 16개국, 아메리카 5개국, 유럽 4개국, 오세아니아 3개국이었다.
연구팀은 다시 여러 유형의 폐기물에서 모두 잠재적 환경영향 지수가 나쁘게 나온 28개 국가를 최종 선별했다.
이 28개 국가에 북한을 비롯해 중국·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모잠비크·세네갈·모로코·에티오피아·멕시코 등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바젤협약을 통해 공개한 폐기물 거래량은 2001~2019년 사이 14억 7000만 톤 정도인데, 이는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무게의 4000배에 해당한다"며 "대부분의 경우 선진국 사이에서 폐기물 거래가 이뤄졌지만,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개도국으로 수출되는 유해 폐기물

재활용을 위해 분쇄된 폐기물. AFP=연합뉴스

재활용을 위해 분쇄된 폐기물. AFP=연합뉴스

예를 들어, 의료 폐기물이나 의약품 생산 과정 등에서 발생한 폐기물(유형 I 폐기물)의 경우 전체 거래량의 40.4%를 차지했고, 이 가운데 90.67%는 선진국 사이에 거래됐다. 하지만, 선진국은 개도국에서 수입한 양보다 4340만 톤을 개도국에 더 수출했고, 최빈국에는 수입한 양보다 2만5500톤을 더 수출했다.

이처럼 유해 폐기물이 개도국으로 수출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피해도 다수 발생했다.
전자폐기물에서 귀금속이나 구리 등을 회수하기 위해 재료를 태우고 산(酸)으로 추출하게 되는데, 중국 내에서 이런 작업이 이뤄지는 지역에 사는 엄마와 아기 체내의 납(Pb) 농도가 대조군보다 5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또, 어린이들의 평균 지능지수(IQ)가 낮고, 폐활량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인도 전자폐기물 재활용 현장의 작업자는 중금속 피부 노출 수준이 전자 폐기물과 무관한 사람보다 훨씬 높았다. 크롬(Cr)은 192.6배, 구리(Cu)는 78.1배, 납(Pb)은 30.9배, 아연(Zn)은 37.3배로 측정됐다.

세네갈 다카르에서는 납 축전지 재활용 탓에 납에 노출된 어린이 18명이 2007년 11월에서 2008년 3월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팀은 유해 폐기물의 개도국 수출로 인한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학 지문(Chemical Fingerprint)의 사용을 제안했다.
폐기물 속에 포함돼 있고, 환경에 유출됐을 때 흔적을 남기는 성분인 중금속과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 등은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잠비크에는 유해 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PCB)이 포함된 것으로 의심되는 기름 24만여 톤이 보관돼 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도 현재 사용 중인 PCB 55.8톤 외에도 폐장비에 들어있는 오염유 403톤, 폐변압기 기름 519톤, 노후 선박 자재에 포함된 22.5톤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2020년 폐기물 340만 톤 수입

지난 2018년 11월 필리핀 에코웨이스트연합 환경운동가들이 마닐라 소재 필리핀 관세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한국에서 불법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필리핀으로 수출된 한국 폐기물 일부는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진 그린피스]

지난 2018년 11월 필리핀 에코웨이스트연합 환경운동가들이 마닐라 소재 필리핀 관세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한국에서 불법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필리핀으로 수출된 한국 폐기물 일부는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진 그린피스]

한편, 연구팀은 2001~2019년 사이 각국의 폐기물 수출입 사정도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미국·독일·프랑스·우크라이나는 폐기물 수입과 수출이 균형을 이뤘는데, 최근 순(純)수출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과 네덜란드·폴란드·스웨덴·벨기에·스페인·캐나다 등은 순 수입국으로 바뀌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폐지·석탄재·폐배터리·폐합성고분자화합물 등 국내 폐기물 수입량은 340만 톤, 수출량은 60만 톤으로 집계됐다. 올해도 약 247만 톤의 폐기물이 수입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2030년까지 모든 폐기물의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로드맵을 지난해 초 마련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