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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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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남녘에 매화와 벚꽃 등 봄꽃이 만개했다. 하지만 이맘때 꽃나무 근처에서 흔히 들을 수 있던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올해는 크게 줄었다. 올 초부터 ‘꿀벌 집단 실종사건’이 보도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꿀벌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체감하니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알려진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멸종한다”는 경고가 허투루 여겨지지 않는다.

농촌진흥청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4173개 농가 39만517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벌통 한 개에 1만5000~2만 마리가 산다고 하니 70억 마리 가까이 사라진 거다. 연초에 경남과 전남에서 꿀벌 실종사건이 드러났을 때만 해도 일부 지역의 일인 줄 알았으나 중부 지역은 물론 강원과 제주 등 사실상 전국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제주 서귀포시 엉덩물계곡에 활짝 핀 유채꽃 사이로 꿀벌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뉴시스]

지난 16일 제주 서귀포시 엉덩물계곡에 활짝 핀 유채꽃 사이로 꿀벌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뉴시스]

꿀을 따러 나간 일벌 무리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벌집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가 떼로 죽는  ‘벌집 군집 붕괴현상’은 과거부터 세계 곳곳에서 진행됐다. 미국에서 2006년에 꿀벌 집단 실종사건이 처음 보고됐다. 이후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전염병으로 토종벌 65%가 사라진 적도 있다. 급기야 2017년 유엔은 전 세계 야생 벌의 40%가 멸종 위기에 처했고, 2035년 꿀벌이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꿀벌 집단 실종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농촌진흥청 민관합동조사 등의 내용을 보면 이상 기후를 가장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다. 꿀벌은 꽃에서 꿀을 빨아 먹으면서 면역력을 키운다. 하지만 지난해 장마와 강풍, 저온현상이 이어져 꿀을 충분히 먹지 못한 꿀벌들이 면역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기온으로 꽃이 일찍 피면서 꿀벌들이 계절을 착각해 벌통을 나갔다가 체력이 떨어져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꿀벌응애(기생충)에 대한 방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거나 응애류를 없애기 위해 과도하게 농약을 사용해 꿀벌 발육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꿀벌 실종 사건이 양봉 농가의 피해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농작물의 3분의 1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 열매를 맺는데 그중 80% 정도를 꿀벌이 담당한다. 그런데 꿀벌이 없으니 과일과 채소 농가의 2차 피해가 우려될 수밖에 없다. 수박뿐 아니라 참외·딸기·호박·오이 등의 작황이 나빠지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오게 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꿀벌이 없다면 세계 10대 농산물의 생산량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부터라도 자치단체와 국가가 나서 사라진 꿀벌이 되돌아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