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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美 장단기 금리 역전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재점화

중앙일보

입력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공급망 병목 현상과 유가와 식량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경기 침체의 신호로 여겨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면서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월스트리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월스트리트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각) 장중 한때 미국의 2년물 국채 금리(2.39%)가 10년물 국채 금리(2.38%)를 앞질렀다. 2년물 국채 수익률은 201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2.45%까지 치솟으며 격차를 벌이다 다시 10년물 국채 수익률 밑으로 떨어지며 거래를 마쳤다.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 금리가 역전된 것은 미·중 무역갈등이 한창이던 2019년 9월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불안한 조짐은 있었다. 지난 28일 미 국채 5년물과 30년물의 금리가 역전된 것이다. 5년물과 30년물 국채 금리 역전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장기 금리는 단기 금리보다 높다. 단기 금리는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지만, 장기금리는 향후 경기와 물가에 관한 전망을 반영한다.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면 안전자산인 장기채로 수요가 몰리며 채권 값이 오르고 금리는 떨어진다. 장단기 금리 격차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장단기 금리의 역전은 보통 경제 성장 전망에 대한 불안을 나타낸다”며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등이 켜지면서 월스트리트 관계자와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채 2년·10년물 금리 추이.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미국 국채 2년·10년물 금리 추이.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금융시장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과거 경기 침체를 앞두고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습효과다. 메들리 글로벌자문의 이코노미스트 벤 에몬스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 없이 경기 침체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로이터도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1955년 이후 미국은 경기 침체가 있을 때마다 2년물과 10년물 국채 금리가 뒤집혔다”며 “예외는 한 번뿐이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2006년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에 시장이 더 예의주시하는 부분은 그 속도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올해 2분기 중 역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 등은 내년 1분기에나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긴축 기조에 더 빠른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단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장기 금리를 앞지른 건 경기보다는 통화 긴축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조 마님보 웨스턴 유니언 비즈니스 솔루션즈 선임분석가는 "2년물과 10년물 금리 움직임은 Fed의 긴축이 연착륙하지 못할 것이란 시장의 긴장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예고에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이 겹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며 “채권 시장에서 수익률 곡선의 역전이 나타난 것은 이런 전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를 예단하기에는 섣부르다는 분석과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국 TD시큐리티스의 이코노미스트 게나디 골드버그는 “2020년부터 Fed가 경기 부양을 위해 엄청난 미 국채를 매입하면서 수익률 곡선이 상당히 왜곡돼 장단기 금리 차 지표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Fed가 장기 국채를 많이 사들여 채권 값이 오르며 장기 금리가 이미 낮아져 있어서란 것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글로벌자산배분팀장은 “일반적으로 장단기 금리 역전은 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 발생했는데 이번엔 한 차례 금리를 올리자 나타났다”며 “시장에서 긴축의 강도와 속도를 과도하게 선반영하면서 단기 금리가 크게 오른 영향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를 예측하는 신호로 더 믿을만한 10년물과 3개월물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과도한 우려에 제동을 걸고 있다. 로이터는 “3개월물과 10년물 국채 금리 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많은 전문가가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신호를 의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 주체들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경기 침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장단기 금리 역전이 높은 확률로 경기 침체로 이어졌기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이를 의식해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금융기관의 위험 회피 경향이 커지면서 경기 둔화가 실제로 나타날 수 있단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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