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는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뿌리거나 터뜨리는 무기를 말한다.
사람의 신경 균형을 무너뜨리는 신경 작용제나 피부에 물집이 생기게 하고 눈을 다치게 하는 수포 작용제 등이 대표적인 화학무기다.
세계 193개국이 참여한 화학무기 금지협약(CWC)이 지난 1997년 발효됐지만, 북한과 이집트·남수단은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2020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1980년대부터 화학무기를 생산, 2500~5000톤의 화학무기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반도에서도 유사시 북한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는 만큼 화학무기 이슈에 무관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2500~5000톤 화학무기 저장
최근 미국 인디애나대학 연구팀은 '환경 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국제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파리를 이용하면 사람이 직접 시료 채취하는 위험 부담 없이도 화학무기 사용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화학무기는 사용 후 자연적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제때 시료를 채취하지 못하면 사용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파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주변 환경에서 맛을 보고 시료를 취하는 데 매우 능숙하고, 그 정보는 내장에 저장된다"고 설명했다.
파리를 이용해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탐지할 수 있다면 위험한 전쟁 지역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위험한 화학물질에 직접 노출되지 않고도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일 후에도 화학무기 흔적 간직
연구팀은 도시공원에 썩은 냄새가 나는 닭 간을 미끼로 두고 파리를 불러 모은 다음 포충망으로 파리를 잡았다.
이 방법으로 검정금파리(Phormia regina)와 구리금파리(Lucilia sericata), 검정파리의 일종인 코클리오미야(Cochliomyia macellaria) 등 3종을 잡아들여 알을 낳도록 하면서 번식시켰다.
연구팀은 이들 파리를 포함해 5종의 파리를 화학무기와 유사한 화학물질인 디메틸메틸포스포네이트(DMMP)과 이소프로필 메틸포스포네이트(IMPA) 등에 4시간 동안 노출했다. 유기인계 살충제인 말라티온 등에도 똑같이 4시간 노출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겼다.
연구팀은 노출 직후부터 1, 3, 5, 7, 10, 14일 후에 파리를 영하 20도로 동결시킨 다음, 죽은 파리의 장에 이들 화학물질 성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파리 몸속의 화학물질 농도는 떨어졌지만, 노출 후 비교적 긴 시간이 지나도 검출됐다.
연구팀은 "화학무기 성분에 노출될 경우 파리도 죽을 수 있어 탐지하기 어렵지만, 화학무기가 사용된 이후 가수분해를 통해 변형된 물질은 파리가 흡수해도 죽지는 않는다"며 "화학무기 성분과 함께 가수분해된 상태의 물질까지 분석한다면 화학무기 사용 여부를 탐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독가스인 사린의 경우 수소이온농도(pH) 7.4에서, 온도 25도 조건이라면 IMPA로 가수분해되는 반감기가 24시간이다. 실제로 이 물질을 사용해 실험한 결과, 노출 14일 후에도 파리에서 검출됐다.
13~45㎞ 거리에서도 파리 불러 모아
연구팀은 "신경 작용제가 물에서 멀리 떨어진 유기물이 풍부한 구획에 격리되면 분해가 더 느려질 수도 있고, 몇 주가 지난 후에도 상당한 양이 남을 수 있지만, 화학 물질 방출 후 어느 시점에서 오염된 지역으로 들어가는 파리가 온전한 화학무기보다는 가수분해 생성물에 노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에서 파리를 채집해 분석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드론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좁고 복잡한 지형에서도 시료를 채취할 수 있고, 더욱 은밀하고 빠르게 저렴하게 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파리는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의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에서 발견되고, 썩은 고기 등 미끼 덫을 사용하면 13~45㎞ 떨어진 곳에서도 파리를 불러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북한 2017년 VX로 김정남 암살
한편, 지난 2020년 4월 전 세계 화학무기 감시기구인 화학무기 금지기구(OPCW)는 보고서를 통해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2017년 자국에서 사린과 염소가스 등 화학무기를 반군에게 3차례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13~2018년 사이 160회 이상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시리아에 화학무기 관련 부품을 수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고, 미국 정부는 2018년 2월 북한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공식 제재를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1991년 제정된 미 '생화학무기 통제 및 생화학전 철폐법'에 따라 대외 원조 금지, 무기 판매 및 무기 판매 금융 지원 등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