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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술 자존심 '도시바', 투자펀드에 졌다…회사 분할 수포로 돌아가나

중앙일보

입력

일본 최초의 냉장고, 세계 첫 휴대용 노트북 개발 등 ‘일본 기술의 자존심’으로 불려온 도시바(東芝)가 위기에 놓였다. 경영 악화에 도시바를 두 개로 쪼개 출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부결됐다. 이번 임시주총에 따라 재건 계획을 새롭게 구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도시바를 둘러싼 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도시바 주주들이 24일 오전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교도 AP=연합뉴스]

도시바 주주들이 24일 오전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교도 AP=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신문·아사히신문 등은 24일 오전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에서 열린 도시바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 분할안이 부결됐다고 보도했다. 회사 측과 회사 분할안에 반대하는 투자펀드가 대립한 표 싸움에서 도시바가 완패한 셈이다. 시마다 타로(島田太郎) 사장 겸 CEO(최고경영자)는 이날 임시주총 직후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해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기업분할?…147년 도시바에 무슨 일이

도시바 사옥. [AP=연합뉴스]

도시바 사옥. [AP=연합뉴스]

도시바는 일본 최초의 전등을 개발한 다나카 제작소와 세계 처음으로 이중 코일 전구를 만든 하쿠네츠샤가 합병해 만들어졌다. 일본의 첫 냉장고와 세탁기, 세계 최초의 휴대용 노트북을 비롯해 최근 SK하이닉스에 매각한 메모리 반도체(낸드 플래시메모리)를 발명한 입지전적 회사다.

자존심 강한 도시바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2015년부터다.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가 벌어졌고, 정부와의 담합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원전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까지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도시바는 내리막길을 탔다. 세계 2위인 낸드 플래시를 SK하이닉스에 매각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했다.

자본잠식에 상장폐지 위기까지 겹치자 지난 2017년 도시바는 대규모 외부 수혈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경영 참여로 주식 가치를 올려 수익을 올리는 행동주의 투자펀드들이 증자에 참여하면서 도시바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또 다른 불화에 시달리게 됐다. 경영 안건을 둘러싸고 행동주의 펀드와 경영진의 의견이 사사건건 갈리면서 내홍이 이어졌다.

국면 타개를 위해 지난해 도시바가 구상한 것은 회사 분할. 투자펀드 반대에 계획 수정을 거쳐 반도체 등 디바이스와 인프라 서비스로 회사를 두 개로 쪼개고, 공조와 조명, 엘리베이터 등 3개 자회사를 매각하겠다는 안을 구상했다. 3000억엔(약 3조원) 규모의 주주 환원도 하겠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주주 의향을 확인하기 위해 임시주총을 열고, 2023년 정기주총에서 정식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투자펀드 등이 “회사 분할은 기업가치 훼손”이라고 맞서면서 갈등은 깊어졌다.

투자펀드 vs 도시바 대립, 어떻게 될까

24일 오전 10시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도시바 임시주주총회 취재를 위해 몰려든 취재진. [AFP=연합뉴스]

24일 오전 10시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도시바 임시주주총회 취재를 위해 몰려든 취재진. [AFP=연합뉴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임시주총 표 대결에서 분할 안건이 부결되면서 도시바의 앞날이 밝지 않다고 내다봤다. 주식 절반을 해외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데다 이중 25%에 달하는 지분을 투자펀드가 갖고 있는데, 이번 임시주총을 계기로 갈등이 깊어져 빠른 재편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임시주총 결의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분할에 반대하는 주주 입김이 거세질 것”이라며 “계획을 큰 폭으로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도시바 경영진이 추진하고 있는 회사 분할 안이 투자펀드 외에도 약 30%의 지분을 보유한 일본 기관투자자들에게도 지지받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닛케이는 또 다른 불씨를 거론했다. 주식 비공개(상장폐지)다. 지난해 영국계 사모펀드인 CVC캐피털파트너스는 도시바 지분을 30% 비싸게 전량 인수하는 대신 상장 폐지하는 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임시주총에서도 주식 비공개가 표결에 부쳐졌다. 투자펀드 3D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가 주주제안 형식으로 주식 비공개 검토 등을 안건으로 올렸지만 부결됐다. 닛케이는 주식 비공개 안이 통과되진 못했지만, 싱가포르 투자펀드 등 상당한 도시바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이 잇따라 찬성한 점을 들어 ”도시바의 주식 비공개 압력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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